연극이야기
소극장 풍경
Alyosha
2010. 4. 2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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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중, 어느 기자는 객석 맨 앞자리에서 펜을 빼들고 열심히 메모를 한다. 그 뒷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씁쓸해진다. 예술에 대해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이가 예술을 가장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역설이, 나의 미간을 짓누른다. 또는 그 기자의 여유 없는 풍모에 대해서 조금은 불쾌했을지도…. 어쨌거나, 모든 여유 없음과 성급함에는 분명 경박함이 조금씩 섞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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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녹취하던 어느 리포터는, 마이크를 무대 쪽에 대고, 마치 얼굴 앞의 인터뷰하는 사람을 대하듯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 귀여운 직업병을 보고 나는 슬몃 웃음이 났다. 그리고, 리포터라는 직업에는 뭔가 흥미로운 상징성이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을 지극하게 배려하는 (대개는 여성인) 리포터의 커다란 수용적 반응들, 조금은 인공적인 편안함. '너의 얘기를 해봐, 내가 집중해서 들어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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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찌어찌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 같은 자리도 만들어졌는데, 대단했다….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퍽 시큰둥했던 배우 한 분은 관객들의 환호 어린 분위기를 접하면서 "작가는 천재인 것 같아요"라고 더듬거리며 말했고, 작품을 읽으면 돌아가신 당신의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눈물을 보이셨다. 공연이 어땠냐는 질문에 젊은 여성관객 두 분은 대답 중에 눈물을 보이기도. 작품 선정을 비롯한 공연 제작 과정을 훤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러니, 연극의 힘은 '기만'에 있고, 가급적이면 무대와 객석의 아우라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그 '공동의 기만'을 유지해야 할 것. 사회자는 가장 담백한 카리스마를 유지한 채 대화를 리드할 것.
어쩌면 이런 자리가 그렇게 놀라웠던 건, 비겁하게 팸플릿과 분장실 뒤에 숨어있는, 그래서 관객들과 소통하는 법은 알지 못한 채 '세련된 연기'를 반복하는 연출과 배우들이 너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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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여배우의 코트 주머니에 삐죽하니 드러난 커피믹스 세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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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과정을 보자니, "연출은 배우에게 먼저 연기 시범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대개, 연출의 시범 따위에 위축되거나 주눅드는 배우들은 열심히 연습하지 않았거나 실력이 후진 것 역시 맞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