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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스타이넘,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外

Alyosha 2009. 10. 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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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도서관 세미나. 발제 김민석. 보조발제 이지훈. 
 세미나에 그렇게 어울리는 책은 아니었던 듯. 어느 스타 여성학자의 잔잔한 회고격에 어울리는 기념비적인 글들.




 Trust Yourself, Personal is political. 그리고 Sisterhood & Solidarity.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유행시킨 구호들. '2세대 여성운동가'들의 활약상. 

 그때의 미국사회만 해도 지금보다 여성들에 대해 얼마나 심하게 갑갑했을지 눈에 선하다…. 그러므로, "분노가 표현되지 않고 안으로 향하면 억울함이나 우울증이 된다. 정치적 행동은 그런 느낌을 치유하는 해독제이며 진보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결국 무엇이 여자를 가장 아름답게 하는 줄 알아? 그건 그 여자의 '일'이야."

 남자들은 젊은 시절에 혁명을 꿈꾸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보수화된다. 여자들은 젊을 때는 보수적인 사람이었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급진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이건 노예제도 폐지운동과 여성참정권운동 시절부터 되풀이되어온 양상이다. 남성지배 사회에서 젊은 남자는 권력을 가진 그들 아버지에게 저항하다가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게 되면 점점 보수화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젊은 여자는 성적 매력과 출산 능력으로 인해 제한적인 지배력을 가질 수 있지만 결국에는 무력한 그들 어머니 자리를 차지한다. (…) 젊은 여자들의 유일한 문제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16) 재미있는 분석.
 
 남성의 육체 속에 있는 여성의 정신이라는 개념은, 여성의 몸과는 다른 남성의 몸이 있고 남성의 마음과는 다른 여성의 마음이 있다고 여기는 사회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트렌스젠더들은 성역할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인격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육체를 외과적으로 변형시킨다. (41) 이렇게 '남성의 마음'과 '여성의 마음'의 동질성을 단순하게 주장할 수 있나?

 1992년도에 전 세계 여성 중 칠천오백만에서 삼억 명 가량의 여성이 성기 절단으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세계보건기구와 미국 국제개발국이 각각 추산한 바에 의하면 말이다. 2009년의 현재의 그 수치는 어떤가? 얼마나 줄어들었을까?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내가 자기보다 못한 직업을 갖기 바라지요." 가슴이 서늘했다. 여기에선 나도 물론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예전에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역시 말로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제서야 알겠다. 살찐 사람이건 마른 사람이건, 풍만한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우리의 육체는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못하지 않은, 무지개 같이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 있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면 절세 미인과 유방절제 수술을 받은 여성이 그리 크게 다르지 않고 모두들 나름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71) 모든 육체의 독자적인 아름다움.

 영국 노동당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각 분파의 대표들이 한 시간 동안 더 큰 방으로 회의 테이블을 함께 옮긴 덕분이었다고 한다. 함께 어떤 일을 함으로써 개인의 고립감을 깨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두 한 번씩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87) 재미있는 사례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말하고 듣는 것에서 실현되는 권력을 공격하는 것은 문화의 혈관을 바꾸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문화의 혈관을 바꾸는 일!

 판타지의 두드러진 특징은 판타지를 가진 사람 자신이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114) 재미있는 심리적 분석.

 마릴린 먼로에 대한 스타이넘의 회고는 따스하고 애잔했다. 그렇지만, 만약 어떤 여자가 자기 분야에서 진지하게 대접받지 못한다면, 또 정서적, 지적 콤플렉스가 있다면, 해결 방법은 그런 진지함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택해온 방법으로서, 자기 힘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125) 프레디 머큐리와의 유사한 발언들도 쏠쏠하다. "저는 환상 속에 사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정말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서로를 가족처럼 대해야 한다는 거예요. 스타, 노동자, 흑인, 유태인, 아랍인,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아,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줘요. 이 인터뷰에서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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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이남이라는 용어를 만든, 요새 소위 '글빨'로 인기를 누리는 김현진의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도 읽었다. 그녀의 가벼운 글솜씨는 인정하지만, 그녀의 방식은 나와 맞지 않는 듯…. (여기에 질투라는 감정은 어느 만큼이나 섞여 있는 걸까?) 자신 안의 "성인아기"가 너무나도 확연하게 드러나보이는, 자기 자신을 지독하게 알아주기를 바라는, 그걸 광고하듯이 글을 쓰는, 자신만만한 위악과 패기로 세계를 바라보는…. 김현진, 백영옥 같은 작가들의 얕은(역사성이 상실된) 향수 냄새를 통절하게 확 깨버릴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내 안의 "성인아기"가 (그녀들과는 또 다르게) 아직도, 매순간, 너무 활개치고 다니는 듯.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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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훈이가 발제를 맡았던
 연효숙 아주대 철학과 교수의 <들뢰즈 · 가타리의 욕망의 미시정치와 여성주의>라는 논문. (진보평론 2007 봄호)

 들뢰즈 · 가타리의 실천적 사유의 핵심이라면,
 1. 모든 일원적이고 총체화되는 편집증으로부터 정치적 행동을 자유롭게 하라.
 2. 세분화와 피라미드적 위계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증식, 병렬, 이접에 의한 행동과 사유, 욕망을 발전시켜라.
 3. 서유럽의 사유가 오랫동안 권력의 형태와 실재에 대한 접근으로 신성시해온 낡은 부정의 범주들(법률, 거세, 결여, 결함)에 대한 충성을 철회하라.
 그러므로 "생산적인 것은 정착이 아니라 유목임을" 믿을 것.

 그들에 따르면 정치는 오직 거대한 사회적 총체에 관련된 것이라는 통념은 반박되며, 그들은 <욕망의 미시정치적 삶의 기술>을 읽고자 하는 것이다. 들뢰즈 · 가타리는 사회관계를 <욕망의 생산관계>로 보았다고. 긍정과 생산으로서의 욕망을 정의한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개방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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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정도의 얘기를 나눴는데…. 여성부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느꼈고, 여성할당제에 대한 논의(북유럽 링크) 등…. "꿀벅지" 문제는 뭐 그렁저렁…. 포르노그래피의 문제는 단순하게 '여성성의 억압'으로만 볼 수는 없을 듯하다는 생각. 일본과 우리나라의 '근친상간' 포르노물에 대한 생각. 그리고 남녀의 생물학적인 '차이'에 대한 섬세한 이해. 쾌락과 고통은 연결되어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 여성성과 우리나라 특유의 개인주의-전체주의(파시즘) 간의 관련성 등등…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