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파리넬리Farinelli:Il Castrato · 샤인SHINE
Alyosha
2009. 4. 20. 18:39
음악 영화를 보고 싶던 차에 <파리넬리Farinelli:Il Castrato>와 <샤인Shine> 두 편을 보았다. 파리넬리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샤인은 한대 중앙도서관에서.
용케 두 영화의 감독 모두 다큐멘터리 출신이더라.
제라르 꼬르비오는 벨기에-프랑스의 방송사 출신으로 많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었고,
스콧 힉스는 천안문 사태와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한 적이 있었다고.
두 작품 다 연출이 탁월했던 것 같다. 선이 굵은 느낌이었다. 작은 것에 매달리지 않는.
영화의 제재도 비슷했다. '천재(혹은 예술가)가 어떻게 세계와 맞닥뜨리는가…." 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보았을 땐, 전자에 비해서 후자는 훨씬 밝고 긍정적이다. 영화의 제목이 상징하듯 말이다. 파리넬리에 비하면 데이빗 헬프갓은 운이 좋았다, 영화 속 대사처럼 말이다. 마침 둘 다 실존인물이기도 했다. 진짜 그들의 인생의 '운'은 알 도리 없지만.
파리넬리의 마지막 시퀀스는 인상적이었다. 형과 동생의 화해의 상징으로, 다시금 먼 과거와 같이, 동생의 여자를 형이 취하는 극적인 결말…. "동생이 여자를 열면, 형이 씨를 뿌린다" 이 장면에서 엘자 질베슈테인의 연기는 뭉클했다. 동생이 지켜보는 옆에서 성교하는 형과 제수의 영상은 사실 조금 신비로웠다. 원형적인 느낌이랄까. 그걸 보고 역겨워하는 평도 있던데, 그러나 어쩌랴. 우리 조상들도 때로는 그런 관계를 취했던 것을. 허나 이제 카스트라토는 없고, 그런 묘한 관계는 역겨울 만도 하다. 그것을 신비롭고 아름다운 결말로 마무리지은 것을 봐도 역시 영화 내내 연출적으로 뛰어났던 듯싶다.
씨를 뿌려서 동생 부부에게 아기를 갖게 해주고 멀리 전쟁터로 떠난다는 형의 뒤늦은(?) '지혜는' 조금 오버페이스가 아닐까 싶었지만 크게 보아 무리없었던 듯. 결국 형과 동생은 그 기묘하고 비극적인 '상부상조'의 질긴 매듭을 풀어낸다. 그러나 알렉산드라의 임신을 축복하는 파리넬리의 행복함이 장식하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는 비극에 가까웠고, 어쩌면 파리넬리의 삶은 비극에 더 가깝지 않았을는지.
여기서 비극이란 '세상과 싸우는 고독한 개인의 場'이라는 의미의 비극이다. 비극적인 주인공은 애절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패배하지만 위엄이 있다. (데이빗 헬프갓은, 물론 영화상에서 말이다, 싸우는 대신 완전히 후퇴한 것이 아닌가? 파리넬리는 끝내 미치지 않는다. 고전주의적인 느낌?) 비극적 주인공의 연인으로서 알렉산드라라는 캐릭터에 무척 경탄했는데, 결국 사랑이란 스스로를 깎아내는 포기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알렉산드라(Elsa Zylberstein)를 보면서 했다. 흥분하기 좋아하는 어떤 여성주의자가 알렉산드라를 본다면 눈에 쌍심지를 켰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각도 물론 일리가 있긴 하겠지만….
헨델이 비중있게 다뤄져서 흥미있었다. (마침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도 헨델을 다루고 있더라) 한낱 기교와 진정한 '영감'의 차이는? 역사와 후손에게 이름이 남겨진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예술에 있어서 '천재'와 범재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지? 파리넬리와 근대적 개인성의 등장(18세기)을 연관시킬 수 있나?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고… 파리넬리가 <배반>과 <고독>을 일삼는다고 형에게 욕을 먹을 때는 가슴 아팠다. 배반과 고독이라…. 어쩌면 진화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와 권위-환경(문화) 간의 끊임없는 줄다리기 속에서 배반을 일삼아야 하는 존재일지도. 그러니 천재는 더 고달플 터이지만, 여하간 지나치게 속박하는 권위-환경을 강제하지 말 것! 천재에게든 범재에게든.
데이빗 헬프갓의 영화는 저 권위-환경에 안타깝게 스러졌던 인물을 다루고 있다. 아버지-권위…. 저 아버지가 악인이 아니라 그 또한 상처받은 인간이었다는 데에 인생사의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헬프갓은 좌절하지 않는데, 그가 다시 일어나는 과정은 제목처럼 빛난다. 술집에서, 거지꼴을 하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상황을 덤블링하듯 반전시키는 바로 그 장면에 다시금 찬사를!
어쨌든 꼴사납고 비천한 그를 감싸주고 일으켜준 두 여인, 그럼으로써 (아마도 '모든') 인간 안에 숨어있는 재능을 만개시켜 준, '돌봄'과 '긍정'의 아름다운 가치를 캐릭터화해냈으며, 내게는 <양자인간>의 작은아씨를 떠오르게 한, 수전과 길리언에게도 찬사를! 영화의 제목은 바로 이들(특히 길리언이겠지)과 헬프갓이 보여준 아름다운 접촉과 애정을 위한 것이리라. 피아노의 '천재'와 '정신병'은 영화적 요소를 위한 양념이고. 제프리 러쉬의 연기에 대해 입을 열면 사족일 듯. 린 레드그레이브(길리언)라는 여배우의 연기. 그녀가 영국인일 듯한 직감이 있었다. 엠마 톰슨을 상기시키는…. 나는 그런 성숙함으로부터 나오는 유쾌함이 너무 좋다!
헬프갓의 홈페이지다. 언제 들어가서 이것저것 읽어봐야것다.
여기는 헬프갓을 소개한 위키백과사전의 내용.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비오는 날 우산처럼 빠질 수 없는 라흐마니노프 3번. 여기 가서 들으면 된다.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어 아쉽긴 하지만, 라흐마니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