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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나는 왜 불온한가>

Alyosha 2010. 5. 2. 16:50




김규항의 자의식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머리말의 "제도 지면에 글이나 끼적거리는 일로 사회적 허명을 얻어가는 일이 내 자의식을 건드렸고, 내 글을 제 얼마간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슬렸고…"와 같은 엄격한 그의 태도가 나는 편안하였다.

김규항의 자의식은 또 나를 긴장하게도 만든다. "세상은 헤아릴 수 없는 옳음과 그름으로 중첩되어 있는데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근거하면,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란 대개 가장 세련된 처세술을 가진 위선자들이다"와 같은 문장은, 내 정신을 죽비처럼 때려주었다.

김규항의 자의식은 생활 속에 스며있다는 점에서 존경스러웠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진보적으로' 챙기지 못하는 진보주의자들을 경멸하고, 나는 이 경멸에 공감한다. "딸은 한 남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가장 정교하게 알아낼 수 있는(폭로하는) '삶의 시험지'다. 한 남자가 '딸에게서 존경받는 인간'이 되려고 애쓴다면 그의 삶은 좀더 근사해질 것이다"와 같은 문장들은, 아동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답다.




<경계도시 2>의 홍형숙 감독은 당시 어떤 지식인들도 2003년 송두율 사태에 관해 적극적으로 성찰하지 않았다고 독설을 던졌다. 그 '독설'은 아래 김규항의 글로써 수정될 수 있겠다. 김규항과 홍형숙은 90년대 초 서울영상집단에서 함께 '영상 운동'을 하던 사이였다고. 김규항은 아직까지도 '다큐판'에 남아있는 홍형숙을 흠모한다. 

우리는 "송두율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질문하기 전에 "국가보안법은 어떤 법인가?"라고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그 질문은 주먹을 쥐고 소리치는 별스런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 우리가 국가보안법에 반대한다면 그 법을 무시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전제로 한 송두율에 대한 어떤 의견이나 조처도 무시해야 한다. 누가 감히 추방을 말하는가. 누가 감히 관용을 말하는가. 이 더러운 공화국에서. (2003. 10. 23. <씨네21>)

김규항의 힘은 겸허함과 진정성을 지닌 그의 예민한 자의식에 있다. 나는 부르주아 시민운동에 대한 그의 이념적인 비판에 온전히 찬성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말빨 좋은 지식인들과 (특히 진보적 성향의) 지식사회의 위선과 게으름을 혹독하게 까는 그에게 환호한다. 그가 가끔씩 '중세의 암흑'과 '근대사회'를 대비하면서 역사를 낙관하는 비유는 뭉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비유 말고는 단 한 곳도 태클 걸 부분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정말 많이 배우고, 많이 생각하게끔 만든 책이었다. 그리고, 쉬웠다.ㅋ "진리는 쉽다. 쉽게 말할 수 없는 건 진리가 아니다…" <예수전>을 비롯, 그의 다른 책들도 빨랑 챙겨읽어야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