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대백희'(山臺百戱), 또는 "어른들을 위한 온갖놀이"라는 공연철학을 갖고 있는 극단 우투리(예술감독 김광림)가, 한국의 전통적 연극양식을 현대화하는 '퓨전 연희극'의 형식으로 2006년에 초연한 <이리와, 무뚜!>. '산대'는 조선 시대 큰 행사나 잔치가 있을 때, 거리나 빈 터에 대를 쌓아 연극이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산 모양의 무대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광대들은 이 무대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 노래, 이야기, 연희 등을 펼쳤다고. 김광림 작가는 이 작품이 실린 자신의 희곡집에서 산대백희의 정신에 대해 "우리 전통이 소중하니까 이것을 살려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애국심 때문이 아니다. 세계화 바람에 맞서보자는 것도 아니다. 해보니까 이것이 좋고 정서적으로 나에게 맞고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있고 즐겁기 때문이다. 산대백희 작업 속에서 나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연극적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즐겁다"라고 적었다고. (도서출판 평민사)
# "한국의 전통 연희의 현대화"를 목표로 한다는 극단 우투리의 창단 공연으로, 변정주씨가 연출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김시연 기자가 2006년에 공연을 보고 와서 근사하게 칭찬한 기사가 있는데, '토종 뮤지컬'(이는 재미있는 합성 개념인 듯ㅋ)의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런 것은 내 가장 좋아하는 연극 양식이기도 하므로 김시연 기자의 말을 조금만 옮겨놓아보자.
배우들은 때론 노래와 춤으로, 또 화려한 곡예로 신명난 마당놀이 한판을 끌고 나간다. 관객들에게 농짓거리도 서슴지 않는다. (…) 피리, 대금, 해금, 장구, 북에 드럼까지 동원한 악사들은 단지 추임새에 그치지 않고 직접 배우들과 말을 주고받으며 극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악장(최영석)은 푸근한 전라도 말씨로 중간중간 극에 끼어들어 배우 못지않은 역할을 한다.
# 한윤선 (평론가?) 씨도 otr 공연포털싸이트에 속이 아주 꽉 영근 리뷰를 올려두었는데, 전통음악에 관한 지식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조금 옮겨두어 보자.
흰색 털로 뒤덮힌 의상을 입고, 간혹 드러나는 배우의 맨살에는 땀이 뚝뚝 흐른다. 자의든 타의든 광대가 되기 위해 흘린 무뚜의 땀도 그렇지 않을까. 한 판 신나게 놀자는 악사들과 배우들은 시종 몸을 가만두지 못한다. 도깨비 '주발뚜껑'은 궁중악기 도뵤시같은 작은 심벌즈를 손에 끼고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깔아놓은 촘촘한 멍석은 둔탁한 발소리를 흡수하고, 배우들의 도약을 준비해준다. 화랑처럼 깃털 한두 개를 머리에 꽂고, 홍두깨로 박자도 나눠보고, 술이 든 호로병을 들고 흥도 재촉해 본다. "등장가세~ 등장가세~" 노래로 사이좋게 시작되었던 판은 무뚜와 검돌이, 무뚜와 도깨비의 대결로 이어진다. 무뚜는 매번 패하고 서툴지만, 이 사건은 후에 무뚜가 광대 '경구'로 곡마단에 남는 결정적인 동기가 된다. 연극배우에서 영화계의 스타로 돋움한 어느 배우의 이름처럼 말이다. (…) 무대로 돌아온 무뚜는 동료들과 함께 무대 꼭대기에 오르는 절정의 곡예를 선보이고, 쇼의 마무리와 함께 작품도 끝을 맺는다. 삼현육각에 배우들의 소리가 어우러지고, 홍두깨와 도뵤시 등의 소품을 더해 발을 맞추고, 탈춤과 굿거리 등 장단이 어우러졌던 작품은 경쾌한 드럼연주로 끝을 맺는다. 악단의 장단에 맞춰, 늘려지고 좁혀지는 박자간격의 '놀아진' 대사들이 일품이다.
# 당시 아룽구지소극장에서 올려졌던 공연은 '이다'에서 기획했었구나. otr에서 그 기획의도도 옮겨적어놓고….
바람타고 하늘 끝 땅 끝까지
마음가는데로 발가는데로 어울렁 놀아보세
칠월칠석일에 견우직녀 따라 볼을 부비고
춘삼월엔 몽룡 춘향이 따라 알콩달콩 살아보세
한국전통연희의 현대적 양식화
1996년 <꼭두각시놀음>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한국전통연희의 현대적 양식화’를 목표로 함께 작업해온 극단 우투리는 2002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우리나라 우투리>공연 작업으로 많은 실험과 함께 여러 가지 가능성과 성과를 얻어냈다. 우리 연희전통이 가진 특유의 연극성, 음악성을 토대로 ‘지금 이 순간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함께 호흡 할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의 연극 양식을 만들어 오면서, 이번에는 <이리와, 무뚜!>라는 새로운 작품으로 그 형식의 포용성을 실험한다.
우화를 통한 자기성찰 도모
‘예술가의 삶을 택하는 강아지 이야기’라는 우화적 이야기를 가지고 현대 사회에서 점점 그 자리가 위태로워지는 예술과 문화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함과 함께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도모한다.
한국문화의 독특성과 세계적 보편성의 만남
안톤 체홉의 <까슈땅까>로부터 영감을 받아 집필된 김광림의 <이리와, 무뚜!>는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 구조와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연희전통의 연극적 음악적 표현을 더해서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에게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서 해외에서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나아가 한국 전통문화와 동시대 연극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기여한다.
이리와 무뚜야!이리와 무뚜야! 집으로 가자꾸나
이리와 경구야! 이리와 경구야! 아름다운 광대야
주인님 반가운 소리에 무뚜 마음 떨리는데
단장님 엄격한 소리가 경구 발길 붙드네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무뚜로 살 것인가
곡마단에 남아 배고픈 경구로 살 것인가
<이리와, 무뚜!>는 모든 대사가 음악인 장단대사이다. 배우는 대사를 하기 위해 기본리듬을 익혀야하고 리듬을 통해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루어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오랜 기간동안의 꾸준한 훈련과정과 수정보안 작업이 필요하다. <이리와, 무뚜!>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극단 우투리의 창단공연으로 탄생, 2006년 6월대학로 아룽구지 소극장에 올라간다.
춤, 노래, 연극, 몸짓이 하나로 융화된 ‘악가무일체’ 공연
악가무 일체야말로 ‘우리연극’이 가진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악‘가무’는 흥을 좋아하는것은 한국인의 기질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악가무일체를 제대로 보여주는 연극이다. 배우들의 춤과 노래, 몸짓에 흥이 절로나고 라이브로 들리는 북소리와 해금, 대금 소리에 자신안에 숨어있는 ‘신명’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국어가 잃어버린 그 음악성을 한국 음악이 가지고 있는 리듬을 통해서 복원
일상의 움직임이 잃어버린 그 표현성을 한국 춤이 갖고 있는 리듬을 통해서 복원하는 것이다. 우리 음악의 특성과 형태 안에서 우리 말의 리듬과 정서가 춤추고 우리 춤 사위의 특성과 형태 안에서 우리의 몸의 리듬과 정서가 연주된다. 우리말들이 우리음악의 장단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우리의 움직임이 전통연희의 한 양식인 “양주별산대”의 춤동작과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공연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 이 작품은 <2006'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도 참여했다. 마지막으로 당시 공연 기획의도는, muzjy님의 이곳 블로그에서 조금 옮겨적어본다.
▶ ‘이야기하기’에 대한 ‘이야기하기’
배우들은 연극 속 인물이 아닌, 단지 배우 개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은 희곡을 ‘이야기하기’ 위해 무대에 등장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이리와 무뚜!”의 이야기를 전달할 뿐이다.
▶ 리듬 속에 살아난 우리의 말과 몸
“이리와 무뚜!”는 한국어가 잃어버린 음악성을 한국 음악이 가지고 있는 리듬을 통해 복원하고, 일상의 움직임이 잃어버린 표현성을 한국 춤이 가지고 있는 리듬을 통해서 복원한다. 우리 음악의 특유한 리듬과 우리 춤의 특유한 정서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어느덧 무대 위에 있는 배우들과 신명나게 어울리게 될 것이다.
오늘 학교에 들러 후배들의 공연을 보고 왔다. 1학년 신입생들이 위주가 된 새내기 워크샾 공연이긴 했지만…. 글쎄…. 솔직히 퍽 실망하기는 했지만, 대학 극회 공연이라는 것이 굳이 작품성이라든지 진지한 연극적 성취만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닐 테니 너무 엄격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야겠다. (2000년대 이후, 대학교 극예술연구회의 목표는 무엇일까? 90년대까지는 설령 어설펐을지라도 연극에 관한 자부심과 패기가 넘쳤던 것 같은데….) 아무튼, 김광림 작가를 비롯한 극단 우투리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내가 위에 길-게 인용한 '정신'들이 단 하나도 구현되고 있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웠다…. 하지만, 새내기들이 즐겁게 작업했고 연극에 나름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그것도 의미없는 일은 아니었겠지…. 그리고, ""세상에 애비 에미 없는 건 광대들뿐"이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광대는 애초부터, 그리고 끝내, 세계(부모-가족)의 권위와 질서에 편입되지 못하는 운명일 것이다. 그 운명이 자신을 까발리게 만든다. (2010년 5월 28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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