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창립 30주년 재즈클럽 ‘야누스’ 주인 박성연
ㆍ23일 노장·신예 연주자 총출동 ‘잼 세션’
1978년 11월23일, 서울 신촌 기차역 근처에 ‘야누스’란 간판이 내걸렸다. 당시로선 이름도 생소한 ‘재즈클럽’이었다. 순대국집과 포장마차가 즐비한 시장통에서 흘러나오던 엇박자의 즉흥연주. 한국의 재즈는 그렇게 출발했다. 미8군 클럽을 빠져나온 연주자들이 시장통 구석의 어둑한 공간에서 낯선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소문을 들은 인근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중국인이 사장이었던 이태원 ‘올댓재즈’가 그보다 1년 전쯤 먼저 문을 열었지만, 당시 그곳은 외국인만 출입이 가능했던 공간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맘놓고 드나들던 클럽은 야누스뿐이었다.
“그때 오셨던 분들 가운데 아직도 찾아오는 분들이 계세요. 제가 얼굴을 기억하는 단골들이 대여섯 명쯤 되고요, 어떤 때는 ‘신촌 시절에 자주 왔던 사람입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오는 분들도 있어요. 이제는 머리가 희끗한 초로의 신사가 그렇게 인사를 건네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찡해 오지요.”

23일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재즈클럽 야누스의 주인 박성연씨. “내 맘대로 실컷 재즈를 노래하고 싶어서 클럽을 열었다”는 그도 야누스와 함께 30년을 보내며 눈 밑의 주름이 많이 늘었다. 집세에 쪼들려 장소를 옮기길 다섯 차례. 신촌에서 출발한 야누스는 대학로와 이화여대 후문, 청담동을 거쳐 현재의 장소에 자리잡았다. 지하철 교대역 1번 출구로 나가, 큰 골목으로 한번, 작은 골목으로 다시 한번 꺾어지면 ‘야누스’라는 작은 간판이 보인다. 50여명이 앉을 수 있는 홀, 무대는 고작 세 평 남짓이다. 하지만 박씨는 “후회하지 않는다. 평생을 즐겼으니까”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재즈는 어차피 비주류 문화잖아요?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는 재즈사에 기록될 정도로 유명한 클럽이지만 그곳도 역시 운영이 어려워요. 제가 80~90년대에 그곳에 여러 번 갔었는데, 일급 뮤지션들의 연주료가 고작 30~40달러밖에 되지 않더라고요. 일본 도쿄의 ‘핏인’(Pit-Inn)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허름하고 폭좁은 나무의자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음악을 들어요. 그래도 그곳은 좀 낫지요. 기린맥주가 후원을 하거든요.”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와 도쿄의 핏인. 그래도 그곳은 한국의 야누스보다 형편이 낫다. 적어도 집세에 쫓기며 다섯번씩 이사를 다니진 않았고, 덕분에 지금도 맨해튼과 신주쿠의 ‘명물’로 존재한다.
어느덧 80대의 노년에 접어든 1세대부터 현재의 젊은 연주자들까지, 한국의 재즈인들이 세대를 이어 거쳐갔던 통과제의적 공간 야누스. 한국재즈의 ‘산실’로 불리는 이곳도 한때 모 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잠시 숨통을 틔웠던 적이 있다. 청담동에 자리잡고 있던 시절이었다. 박씨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야누스에 다니던 손님 가운데, 대기업을 운영하게 된 젊은 기업인이 있었다”며 “그분 덕택에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훌륭한 시스템을 갖춰놓고 최고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본인을 ‘한국 재즈 1세대’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선 도리질을 쳤다. 그는 “가수 박정운의 어머니 박일량씨는 정말 뛰어난 재즈가수였다”면서 “지학자, 김선자, 이정순씨 등 미8군에서 같이 활동했던 선배 보컬리스트들이 아주 많았다”고 회고했다. “난 그때 정말 ‘졸병’이었어요. 최희준 선배도 8군 안에 있던 클럽에서 함께 노래했는데, 재즈 발라드를 기막히게 불렀어요.”
22~23일 야누스에서 열리는 30주년 기념 콘서트. 생존해 있는 1세대 노장부터 최근의 젊은 연주자들까지 모두 출동해 한바탕 잼 세션(Jam Session)을 벌인다. 악보도 리허설도 없이 즉흥으로 펼쳐지는 협연. 한국 재즈의 어제와 오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자리가 될 성싶다. 박씨는 “운영이 좀 힘들긴 해도, 야누스를 잘 지켜내야 나도 노래하고 후배들도 계속 연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30주년 콘서트는 실황을 그대로 녹음, 음반으로도 나올 예정이다. (02)546-9774
<글 문학수 선임기자·사진 김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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