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년 삼제 협상: 1차 비스마르크 체제, 유럽 정치질서 현상유지, 프랑스 고립,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대한 공동 대처 등
1875년, (독일과 프랑스간의) "전쟁위기" (러시아 고르챠코프의 전쟁 욕구를 억제시켰다는 왜곡, 비스마르크에 대한 모욕)
1875년,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에서 오스만 터키의 지배에 대한 반란
1876년, 불가리아의 반란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의 합의 하에 발칸에 개입)
1877년, 러터전쟁 발발
1878년, 러-터간의 산 스테파노(San Stefano) 평화조약 체결 (영국, 오스트리아 ↔ 러시아)
1878년 베를린 회의 (독일의 중재)
1879년 10월 이국동맹: 독일-오스트리아의 대 러시아 방어동맹
+ 독일, 러시아 농산물에 보호관세정책을 단행
1881년 삼제 협상: 독, 오, 러 3국. 제4국과의 전쟁 시 우호중립.
다르다넬스-보스포루스 해협 봉쇄, 프랑스의 고립, 유럽 정치질서 현상유지, 러-오 간 잠정 화해
1882년 5월 삼국 동맹: 대 프랑스 동맹, 러시아-오스트리아 전쟁시 이탈리아 지원
1885년,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의 전쟁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간의 대립 야기)
1886년 "불랑저(Boulanger)위기"
(좌파 공화주의자들과 보수적 우파를, 패권주의적 보나파르티즘과 급진적 민족주의 이념으로 결합시킴)
1887년 삼제동맹 파기됨
(러시아 국채에 대한 독일에서의 유통을 금지시킴 → 러시아는 이때부터 파리 자본시장에 재정적으로 의존하게 됨)
1887년 베를린: 프랑스, 러시아와 동시에 전쟁을 치를 수도 있다는 <양면전쟁> 이론이 심각하게 고려됨
(동서유럽의 "이중위기"에 맞서기 위해)
1887년 2월 지중해 협정: 대 프랑스
* 영국-이탈리아: 아드리아해, 에게해, 흑해 등 지중해의 현상유지(러시아 견제),
이탈리아의 영국-이집트 지지, 영국의 이탈리아-북아프리카 지지
* 영국-오스트리아: 중근동 공동이해
* 이탈리아-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 대항하는 합의를 프랑스와 하지 않을 것
1887년 6월 재보장 조약: 러시아-독일. 방어동맹.
러시아의 동발칸지역의 우월한 지위에 대한 독일의 보장, 러시아-프랑스의 접근 방지
1890년 독일: 홀슈타인에 의한 재보장조약(독-러)의 파기
1892/94년 러프동맹의 탄생
(독일을 비롯한 중유럽 강대국들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영국을 견제하는 측면 강했음)
1895년, 러시아-독일-프랑스: 삼국간섭
1898년 파쇼다 위기
1899년 보어전쟁
1900년 의화단 사건
1902년 영일동맹
1904년 러일전쟁
(또한 1904년에는 <영프협상> 체결됨)
1904년: 독일의 러시아에 대한 대륙동맹 제의 (영프협상의 결과)
1904년 모로코 위기
(독일 ↔ 영프협상)
1905년 7월: 빌헬름 2세와 니콜라이 2세 사이에 비밀조약인 독러방어조약에 서명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 중, 재정적 의존을 위하여 프랑스를 택함
1905년 11월: 프랑스의 참여 없는 독러방어동맹은 무효라고 베를린에 통보
1906년 4월: 알제시라스 회담
※ 독일의 대외적 '고립' 심화되는 양상
1907년 삼국협상의 결성
1912/13년의 발칸위기
"러프동맹은 자신의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함"
1913년 프랑스는 3년 복무 법안 통과
1912년 러시아는 1916/17년에 완성될 것으로 예측되는 군제개혁안 발표
1914년 5월 영국과 러시아간의 비밀해군협정
* 솔즈베리 (링크)
* 1차대전 원인에 대한 분석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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