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자기 자신을 연민케 만들며, 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자 "투쟁"하는 강한 정신을 가로막는 경향들. 이런 것을 묘사하는 부분이 이 책의 백미다. 예리하기 그지없는 시선으로 그리는 현대인과 서구 민주사회의 온갖 기만과 '역설'―주로 자유와 책임을 둘러싼―적 상황. 정곡을 찌르는 많은 인용구들. 냉정 일변도이면서도 유려한 어조.
세계는 단순하지 않다. 또 만만하지 않다. 그리고 순수하지 않다. 모든 관념은 언제나 오염되기 마련이다. 그 관념이 아름다울수록 더럽혀지기는 쉽다. 브뤼크네르는 참으로 흥미진진하게 현대사회에 만연한 '관념의 타락'을 해부했다. 이 타락이 왜 발생하는가? 그것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개인의 본질적인 핵심가치인 자유를 엄정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향성을 브뤼크네르는 대중문화, 성, 제3세계 구호활동, 보스니아 내전 사태 등으로부터 길어올린다. 자주 인용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니체의 비판적인 언명을 아주 세련되게 구현해 낸 작품인 듯싶다. 그러므로 제목 '순진함의 유혹'은, 다시 말해, 천박함의 유혹이거나 혹은 "인간이 비루한 양떼가 되게 만드는 유혹" 정도로 고쳐도 무방하다.
여유가 된다면 책 전반에 대해서 꼼꼼하게 분석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즐겁게 읽었다. 워낙 인상 깊은 표현들도 많았지만, <새로운 분리전쟁> 장에 대해서 옛 사회학과 누나들과 토론한다면 훨씬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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