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하창고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알고 있었다.



*

 상쾌한 기분. 그렇다.
 지금 나는 상쾌한 기분이다.

 아까 자정 무렵부터, 해야 하는 시험준비를 제쳐두고, 인터넷을 떠돌았다. '나'에 관련된 것들을 찾아서.

*

 먼저 인터넷으로 사주를 찾아보았다. 조금은 애처로운 심경으로.

 점쟁이가 점을 치거나 무당이 굿을 하는 것, 요컨대 巫의 세계는, 대상자의 '잠재적 · 심층적 경향성'을 극한적으로 예리하게 포착해서, 그의 의식을 한순간 명민하게 뒤흔들어놓는 게 아닐까. 그래서 대상자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던(그러나 실은 알고 있었던) 자기 안의 침전물들에 전적으로 열린 상태가 되게끔 만드는 게 아닐까. <주역>을 비롯한 동양철학의 고전들을 꼭 한 번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 그 경향성을 찾아내는 방법론적 메커니즘이 아직도 내게는 생경하고 '비과학적'으로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수천 년 인류의 문명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히 이해될 성질의 것은 아님은 분명하다.

 나를 유쾌하게 (조금 소스라치게) 만들었던 사주의 결과. 특히 이 곳의 결과는, 내게 의미심장했다. 
 일을 미루고, 벌려놓고, 뜬구름을 잡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경향성.
 재주는 많은데 뭣도 이루지 못하기 쉽다는 경향성. 
 결국 몸쓰는 일은 하지 못하고, 머리쓰는 일로 '약삭빠르게' 벌어먹을 것이라는 경향성.
 전반적으로 가차없이 호된 사주가 오히려 나를 통쾌하게 자극해주었다. 
 그리고, 그렇지만,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의 운명에 승리한다는 것이 대치되는 말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

 그리고 학교 동기 K와 친구 L, 군대 동기 P와의 네이트온 대화. 
 친구 L의 그 무지막지하고 정제되지 않은 언변은, 오늘의 내게는 정말 '쓴 약'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을 세운답시고 마지막까지 인정하지는 않았는데. "너 자신을 동정하지 말고, 인정해라." 그 친구가 유려하고 지성적인 화술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단순명쾌한 통찰의 힘은 무딘 것이 아니리라. 적어도 아까 전의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약했던 것이다.

*

 그리고 내가 그간 끄적였던 블로그, 미니홈피 들을 다시금 훑어보았다. 여기서부터가 더 중요하다.

 마페졸리가 두 명의 '아내'(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글쓰기 수업을 듣는 누군가의 에세이에서 오늘 처음 알았는데, 지어낸 말은 아닌 것 같다.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다. 그의 추종자로서 내가 '바라고 있던' 개인적인 생애사와 실제 그의 삶이 심각하게 어그러지는 데서 오는 불편한 충격. 어찌 되었든, 마페졸리라는 키워드로 인천의 도시-인문학 계획을 알게 되었는데 신선했다. 마페졸리,와 인천,으로 검색하면 나올 것.

 여성동아 싸이트에도 들어가 보았구나. 만약 내가 계속 방송사 공채를 준비한다면, 여기에 자주 들어가 볼만 하다. 우리나라 TV의 주 시청자층은 여성, 그중에서도 3-40대 여성이라고 한다. 

*

 그리고 어떤 일본 대학원생(?)의 블로그에도 오랜만에 들어가 보았다. 미시마 유키오,라는 검색어로 알게 된 블로그. 귀한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이 '선배'는 일본에서 문학 혹은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90년대 초반 즈음에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그 쓸쓸하고 우울한 정서를 간혹 내비친다. 많은 책을 읽었고, 사유의 깊이가 끌린다. 깔끔한 블로그와 포스팅에 자신의 생각을 '접어놓는' 품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언젠가, 이 '선배'에게 e-mail을 한 통 써보고 싶다.

*

 대학원…. J 선배(선배의 블로그)와 얘기해볼 꺼리. 그 선배는 다가오는(이미 다가온) '네트워크' 세계에 주목하고 있다. 정보의 생산과 분배, 해석과 소비양식이 탈집중화되고 탈권위화되어 있으며,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능동적인. 그 선배와 좀 더 깊고 다양한 토론을 하기를 바라는데, 그러기에는 지금 내가 갖춘 개념과 이론, 독서의 양이 형편없다. 이것은 인정해야 한다. 일단 내 입장은 거기에 대해서 부정적이거나, 아니면 각론적으로 훨씬 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나는 '네트워킹'과 '非네트워킹'이라는 구분이 가능하다면, 인터넷 세계의 담론 형성 과정 이전의 제도적 권위(非네트워킹사회)에 기초한 '훈련'의 필요성에 주목한다. 여기에는 미네르바 사태 등등의 반론이 가능할 듯. (미네르바 일간스포츠 연재) (미네르바의 책: 읽을 것) 그러나 미네르바 사태와 같이 '특수한' 현상으로써, 담론형성에 기여하는, 고급 혹은 양질의 정보를 생산해낼 수 있는 기성 제도의 무위성를 강변할 수는 없지 않을까. 물론 그 '제도' 자체의 폐쇄성과 한계성은 제도 내외에서도 이미 충분히 지적되고 있는 문제이며, 소위 전문가 혹은 지식인을 키우는 제도적 정비는 어떤 형태로든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성 '제도'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과의 상호-역동적 관계에 대한 것인데. 어찌 되었든, 일단 내 생각의 근저에는 그런 제도적(사회적) 축보다도, 정보를 생산, 해석, 수용하는 개개인들의 능력 혹은 양태에 관해서 주목해야 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막상 '누구나 떠들 수 있는' 세계가 와도, 영향력있고 파급력 있는 정보와 이념은 '훈련받은' 소수에 의해서 제공되고 주창될 것이라는 생각. 그런 메커니즘이 무의미하느냐, 나아가서 그러한 세계에서 "대중의 지성이 소수 '전문가'의 지성보다 언제나 우월하다"는 질문에 대해서라면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는 것. 이것은 선배도 당연하게 인정하는 것일 테다. 요점을 말하자면, 나는 그 非네트워킹(오프라인) 세계에서의 '개인적인' 학문적 지성적 훈련이, 앞으로 미디어 환경이 얼마나 더 개방적으로 바뀌든간에 중요한 것으로 남으리라고 생각한다. 더 중요해질 수도 있고. 물론 그 영역의 폐쇄적-나르시시즘적-현실괴리적 성격이 개선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별문제로 치더라도. 

 재밌는 것은, 내가 이렇게 '훈련'을 강조하는 이유가, 대학을 졸업한 후 그 '훈련'의 과정을 너무나도 받고 싶은데(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그러한 바람에서 너무나 엇나가버린 '나 자신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의 떡이 커보이고, 손에 없을 때 소중해 보인다는 말이 너무 재밌으면서도 또 서글프다. 그러나, 내가 뭘 하고 젊은 날에 돈을 벌든간에, 아마도 언젠가는 다시 공부를 하리라는 예감을 해본다. [J 선배의 경우는 어떨까? 이런 문제들과 맞물린 그 선배의 '자신의 문제'는 무엇일까.] 

*

 말이 너무 길어졌다. 사실 대학원, 했을 때에, 나는 언젠가 내가 성공회대로 찾아가서 삼겹살을 얻어먹었던 사회학과 석사과정에 있던 장 모 '선배'를 떠올렸던 건데. 이름이…. 이름도, 네이버 블로그의 주소도 잊어버렸다. 뭐 지난 몇해 전의 석사 논문 검색해보면 금방 찾을 수 있으리라. 내가 찾아갔던 게 아마 2005년 정도가 되겠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낯뜨겁고도 우스꽝스러운 기억이지만, 그런 낯뜨거움이 싫진 않다. 내가 얼마나 외로운 인간이었으면, 블로그에서만 접하던 생판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 혼자 찾아가서 무언가 대단한 말을 나누리라고 기대했을까. 어린 날의 쏠쏠한 '만용'이긴 했지만 그에게 찾아갈 때, 말이 통하는 친구 혹은 선배 한 명 정도는 대동했더라면 훨씬 좋았으리라. 혼자 겪은 추억은 대개 쓸쓸해지기가 십상인 것…. 그러나 지난 내 대학생활의 주된 정서는 어쩔 수 없이 쓸쓸함이니.

*

 그리고 지난 시절의 H의 홈피를 찾았을 때에… 

 길게 말하지는 않으련다. 그러나, 그 시간은 내게 정말이지 '조용한 환희'의 순간이었다. 어차피 여기 기록하지 않아도, 앞으로 내 마음속을 환하게 비출 만큼 강렬하게 남아있을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내 자신의 과거를 업신여긴다는 것은,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했던 이들을 업신여기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사랑의 영역에서 '이유'와 '논리'를 따지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짓도 없을 터이니, 나는 어떤 이유나 논리나 정당성 없이도, 지난 시절에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존재였다는 것을. 그래, 나는 삶의 그 비논리성과 비언어성, 비인과성을 충분히 믿을 만하다는 것을. 나는 내가 아는 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복된 사람이라는 것을. 풍성한 행운을 누렸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겪었던 불안과 자기비하의 감정들의 근원을,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 거짓말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는 것도 나는 깨달았다. 마음의 거짓말이 무서운 이유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자신이 모르는 것으로 치환시켜버리는 그 은밀하고 타성적인 힘 때문이다. K와의 기억, 그리고 그 '폐막'의 흔적들을 다시금 들여다보면서, 나는 그야말로 치가 떨렸다. 사기꾼들이 만든 연극을 무대에 올렸을 때에, 커튼콜 이후의 '평범한' 박수는 그 평범함 때문에 훨씬 더 진저리나는 것이다. 내 2008년의 기억들을 생각하니, 나는 마치 끝간 데 없는 끈적한 어둠을 통과해온 듯하다. 나는 그만큼 거짓말쟁이였던 것이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인터넷을 떠돌면서, 괴롭지만 즐거운 심경으로 이 긴 글을 적게 만든,  L. 

 그녀를 대하면서 내가 왜 그렇게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졌는지를, 나는 이제 알 수 있다.
 내 청소년기, 대학시절의 '거대한 상실'을 그녀의 과거-현재와 비교하고 있었던 것. 
 감히 말하자면, 나의 이런 나약한 심경이,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내가 진정한 '사랑'에 다가서고 있는 고민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라는 거울(엄존하는 현실)을 통해, 나의 지극히 인간적인 약점들을 반추하고, 속속들이 파헤쳐보는 과정이기 때문에. 나는 여태껏 그런 '현실에의 대면'을 이리도 생생하게 경험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는 내게 대가없는 크고 넓은 사랑을 선뜻 먼저 건넸고, 또 대개는 내가 이런 심연에 빠져들 만큼 개인적 아이덴티티가 확고하지 못했다. 그러니 그들을 대하면서, 나는 내 안의 우물에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을 온전하게 얻는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알지 못하고….
 
 그녀와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이제 조금은 거리를 두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키워갈 수는 있으리라.
 거리를 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 현대시조(<데이트>, 유자효)와 같은 것이리라.


저음으로 말할 것
잔잔하게 웃을 것

햇빛을 가득하게
음악은 고풍으로

그리고 목숨을 걸고
그 평화를 지킬 것.


 
 그녀와 나 사이에, 앞으로 잔잔한 성실성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빛나는 일들이 가득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