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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중인 괴테에 대한 슈타인 씨 댁에서의 대화: 페터 학스




 독일의 문제적인 작가 페터 학스의 이 희곡은 정말 흥미진진하고, 그 구성과 감정선의 조절, 그리고 유려한 대사의 측면에서 특히 뛰어나다고 생각된 작품이었다.

 "허울 좋은, 기만적인 이상주의자"로 비난받기도 한다는 페터 학스. 그의 작품활동 초기, 서독 자본주의 사회의 염증을 느끼고 동독으로 건너간 그의 행보는, 그리고 사회주의 동독과 자본주의 서독의 평론가들 모두에게 '껄끄러운'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은,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만약 그러하면서도 "현대 독일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가"라는 평가가 정당하다면, 이 페터 학스(1928~)는 꽤나 대단한 인물이 분명할 것이다.  

 괴테와 셰익스피어 등 고전주의적 문학의 부흥을 목표로 한다는 그의 작품활동 후기. 이 또한 시사적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하나를 읽었다고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다.
 
 크게 나누자면, 역사극(또는 서사적-사회주의적 연극)에서 시대극(고전주의와 사실주의적 전통)으로 변천하는 독일 연극계의 헤게모니. (게오르그 루카치를 읽을 것!)

 이 작품은 그의 작품들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읽는 내내 신선하면서도(모노드라마의 형식) 깊이 있고 상징의 폭이 큰 대사들에 찌릿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인상깊은 부분들을 옮겨 적고 있는데, 아름다울 정도로 통찰력 있는 대사들이 매우 많다. 여성문제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논의 전개가 인상적이었고, 괴테의 삶과 괴테의 천재성에 대하여. 괴테라는 인간에 대하여. 보통 사람 중 하나의 '군계일학'에 대하여. (나는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후끈거림을 느꼈다. '범재'도 못 되는 주제에!)


* "헨릭 입센(Henrik Ibsen:1828-1906)의 '사회의 기둥(Stützen der Gesell- schaft)'이란 작품으로 활동을 시작한 '민중극장'은 동독 체제 시대 때는 예술문화를 체제유지의 선전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동독 정권에 저항하면서 부패한 동독 체제에 의해 여지없이 망가진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와 사회개혁, 그리고 사회정의로 회복시키려는 방책으로 연극예술을 의식, 사회체제에 비판적인 작가였던 페터 학스(Peter Hacks),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그리고 크리스토프 하인(Christoph Hein)등이 중심이 되어 활동을 했지만 동독의 사회체제에서 이들 예술가들의 활동은 당국의 방해와 압박, 감시로 한계를 지닐 수밖엔 없었다. 1989년 11월, 동독체제에 대한 저항과 시위에 내면적인 견인 역할을 '민중극장'은 했지만 독일통일 이후 1992년까지만 해도 동 베를린에 위치한 이 '민중극장'은 처치 곤란한 '죽은 극장'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김상수, 독일 베를린 '민중극장'(Volks Bonhe) 극장장 프랭크 카스토르프(Frank Castorf)와의 인터뷰 中, 프레시안 인터뷰전문)

*

 모두들 괴테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을 기뻐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자신의 선행권리를 주장하는 괴테의 좀 건방진 방식, 다시 말해 자신의 업적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리고 그가 주장하기 때문에 그만이 가지고 있는 그 방식을 끔찍히도 싫어했으니까요. 대공이야말로 괴테보다 훨씬 고귀하게 태어나셨지요. 대공이 예법을 손상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대공은 무례를 범함으로써 예법을 손상시키지요. 하지만 괴테는 그가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예법을 손상시킨답니다. (18p)

 어쨌든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렸어요. 물론 증오는 아니고요. 그는 그가 경멸하는 우리들을 위해서자신을 희생했어요; 구제받기를 원하지 않는 우리들을 그는 상상 구제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 학문이 마침내 그를 진리와 합일시킨 것이지요. 우리 같은 사람을 통해 불필요하게 우회하지 않고 말이에요. 그는 인간을 이해했지만 단지 두개골만을 사랑했어요.(…) 무리에서 떨어져 쭈그리고 앉아서, 마치 의무인 양 우리 스스로 제공한 우리의 모습을 수성 물감으로 그리곤 하는 그의 습관을 그대로 계속하도록 우리는 참아야 했어요. 우리가 그를 지루하게 할 때는 그가 무엇에라도 열중하도록 해주어야 했다는 말이에요. (…) 하지만 그는 열중할 일을 찾을 필요조차 없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물감도 없이 앉아서 죄를 짓고 있고, 그리고 불멸의 영혼을 모독하고 있는 거예요. (29-32p)

 밑바닥 같은 그의 무례함을 나는 무한한 인내로 외적인 측면에서 극복시켰어요; 그는 이제 더 이상 발로 쿵쾅거리지 않아요. 하지만 무례함의 근저에 있는 무례함 - 모든 인간 특히 모든 여성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내는 그 자의식 - 이것만은 제거시킬 수가 없었어요.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괴테는 나에게 칠면조의 허풍스러운 목을 연상시켜요. 그는 뜨내기였어요; 내가 그를 키웠고요; 이제 그는 교육을 받은 뜨내기예요; 천재라는 뜻이에요. (32p)

 이 사람은 성격이 없어요. 흠 잡을 만한 습관도, 비판할 만한 원칙도 없고요. 그의 확고하지 않은 부분을 찾아 나서면 역으로 확고한 부분조차 찾아낼 수가 없고, 그러다 보면 발 밑의 바닥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지요. 다음 수순을 생각하고, 실수를 하고, 어디서 거절을 했어야 했는지를 깨우치고, 움직이고자 했던 곳에 부딪히고 하다보면 갑자기 그 허술한 사람 대신에 나 자신의 허술함과 마주치는 순간에 도달하게 되지요.
 
 남자는 하나의 문장이에요. 여자는 이 문장에 대한 가능한 모든 부정들의 총합이고요.
 괴테는 모든 가능한 문장들의 총합이에요. 부정들까지도 포함하는 총합 말이에요. (52p)

 그는 솔직한 애정에는 도대체 능력이 없었어요. 아무 감정도 없었고요. 왜냐하면 어떠한 감정도 그에게 낯선 것은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는 결론에만 열을 올렸는데, 그것 역시 그가 한번도 열을 올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괴테는 젊은이에요. 젊은이란 -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 사랑할 줄 모르는 남자예요. 서른을 넘긴 미혼자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성자하는 과정 속에서 허물어져가는 모습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58p)

 슈타인, 당신은 내가 이 남자의 냉정함을 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에게 그렇게 막무가내로 끌릴 수 있었느냐고 물으시겠지요. 여보, 그것은 바로 이 냉정함 때문이에요. 여자들이란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끌린다는 것을 모르시나요? 나를 지배하는 괴테의 힘은 그의 무한한 자기 사랑에 기인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의 자기 사랑의 비밀은 그것이 타인에 대한 사랑을 조금도 축소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60-61p)

 이건 아마 사건들로부터 도출해낼 수 있는 일종의 법칙일 터인데; 좀 더 가까이 사귀게 되면 자신이 패배하리라는 것을 예감하는 남자만이 실제로 확신을 잃는 법이에요. (…) 이건 명백한 사실인데, 남자들에 대한 우리 여자들의 실망은 그들에게 없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 때문이에요. 특히 괴테는 그의 실수 중 어느 것에도 연연 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장점들에만 관심이 있어요. 자신의 약점은 자긍심으로 방어하지만 자신의 덕목은 완전히 무장해제 상태로 놔두지요. 그는 자신의 덕목에 대해서 최소한의 회의도 갖고 있지 않아요. (71-72p)

 그러면 그는 사실 고통스러워했어요. 게다가 고통받는 것을 아주 싫어한 것만도 아니었어요. 그렇게 고통스러울 때도 할 말이 있었으니까요. 고통 속에서도 집필하는 몰염치라고나 할까요. 그 뒤에서는 비밀스러운 쾌락의 냄새가 났어요. 고문대 앞에서 인간이 입을 다무는지 여부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인간은 소리를 지르지요. 괴테는 물론 집필을 하고요. 그리고 이 점에서 그는 진실을 말한 것이에요.

 그래요, 슈타인. 삶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삶을 사랑하는 거예요. (80p)

 (그녀는 손에 든 편지를 떨어뜨린다. 말한다) 오, 하나님, 모든 것이 우리 모두에게 왜 이렇게 너무나도 어렵기만 한가요? (105p; 마지막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