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8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스털링셔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과거 교회나 학교가 담당했던 교육적 역할을 대중매체인 영화가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다큐멘터리에 뛰어든다. 본래 플래허티의 제자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지만, 서양인의 시각에서 오지에 사는 원주민을 다룬 플래허티식 다큐멘터리에 대한 불만을 현재 벌어지는 상황에 관심을 갖는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해소해나간다. 그는 자신의 스태프들에게 영화는 단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므로 탐미주의에 빠지지 말도록 교육시키면서 계몽적인 기능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주창한다. 그리고 그동안 관행이 되어왔던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의 설명이나 해설 대신 출연자들이 직접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밝히는 인터뷰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만들어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기록영화 이론의 창시자로서 1920년대 중반 프랑스어 '도퀴망테르'(documentaire)를 따서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영국 통산국 산하의 필름 유니트(Film Unit) 감독으로 재직하던 1929년 <유망어선Drifters>을 발표하였다. <표류자> 또는 <표류자들>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북해의 청어잡이 어부들의 삶을 기록한 단편으로서 초기 영국 기록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북해 청어잡이 어부들의 생활을 그린 15분짜리 무성필름은 거친 파도 속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는 노동의 현장, 미끄러운 갑판과 낚시바늘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카메라로 훑어나간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내는 세밀한 카메라의 움직임, 현장의 미세한 조각까지 잡아내는 빅 클로즈업, 빠른 템포의 편집 등이 작품의 특징이며, 이는 당시 영화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 존 그리어슨(John Grerson)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일찍부터 다큐멘터리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던 사람이며, 최초의 다큐멘터리 이론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다큐멘터리가 교회와 학교 대신 교육을 담당해야 하며, 일종의 설교단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 또한 직접 연출한 작품은 <유망선 Drifters, 1929> 등 한 두 작품밖에 없지만 제작, 강연, 저술 활동을 통해서 영국 다큐멘터리 운동을 주도했으며, 플라허티식의 다큐멘터리 방식―이국적인 정취와 그 속에서 벌이는 개인사적인 이야기―에서 그리어슨식의 다큐멘터리―멀리 떨어지지 않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개인적인 사회상을 담은 이야기―로 점차 다큐멘터리 제작 패러다임을 이동시키는 데 일조했다. (<영화의 역사>, 한길 끄세주9 中)
그리어슨은 당시의 다큐멘터리를 크게 newsreel, magazine, interest(lecture film) 세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즉 당시 다큐멘터리는 세계를 단순히 묘사, 노출 (describe, expose)하고 있을 뿐 그 속에 담겨있는 진실을 드러내지(reveal)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이유로서 단편적인 주제와 산만한 내용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다큐멘터리에게는 예술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영화는 자연 그대로의 물질로부터 만들어졌지만, 그 자연의 소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실제적인 차이가 있’다고 역설하면서, 실재의 창조적 방법(creative treatment of actuality)이 곧 다큐멘터리라고 정의 내린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리어슨은 플라허티의 다큐멘터리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 그의 영화에 있는 드라마적인 요소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특히 플라허티가 미리 준비되지 않은 대본에, 예고되지 않은 촬영을 고집하면서도 예술적으로 뛰어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는 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어슨에 따르면 드라마적 요소가 세계의 표피를 걷어내고 세계를 해석하게 함으로써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허티가 영화 관객이 직접 발붙이고 있는 세계와 너무나 먼 곳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 그리고 지나치게 개인적인 드라마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로서 한계를 지닌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리어슨은 베를린 도시의 일상을 담은 Ruttmann의 <베를린 도시 교향곡, 1927>은 먼 이국 땅의 ‘낭만’에서부터 ‘사실’로의 회귀로서 의미가 깊다고 한다. 또한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구별되게 예술적으로 의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영화들처럼 문학에서부터 빌려온 ‘이야기’, 무대에서부터 빌려온 ‘연극’적 요소로서 의미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Ballet mécanique, 1924>와 같이 컷 안에서 벌어지는 이미지의 운동(기차 바퀴의 움직임 등)과 컷과 컷의 조합, 리듬, 운동을 통해 베를린이란 도시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베를린이란 도시를 관찰하고 있을 뿐, 왜 관찰하고 있는지 이유가 담겨져 있지 않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다큐멘터리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노골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지라도 목적 없는 다큐멘터리의 무의미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참여를 이론과 실천으로 검증했던 인물이면서도, 지금 사회참여 성격이 강한 다큐멘터리들이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드라마적, 미학적 요소를 강조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다큐멘터리가 “일상에서 극적인 상황을 도출해 내고자 하는 욕망: 시민의 눈을 지구 끝에서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불러 들이고자 하는 욕망”(1939)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 존 그리어슨의 다큐멘터리에 관한 10가지 믿음(1932)
1. 다큐멘터리는 기술적으로 사회를 관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매체이다. 왜냐하면 사회의 진실된 소리와 모습을 듣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다큐멘터리는 지역사회의 생활과 정보를 선택적이고, 창조적으로 분류, 제공하여 공동체의 삶을 유지하게 하는 예술 형태이다.
3.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과 그들의 주거지, 은밀한 곳, 사업장 그리고 오락장 같은 곳은 다큐로 하여금 공동체의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 있게 하는 지표들이다.
4. 공동체의 리얼리티로부터 얻어낸 스토리는 시추에이션 코미디나 드라마 같은 것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사회적인 문제나 불합리한 것들을 드러낼 수 있다.
5. 다큐멘터리는 각개의 라디오나 TV방송사들이 방송을 내보내는 지역사회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6. 드라마 제작자가 만들어낸 것보다 훨씬 더 놀랄 만한 일들이 현실에서는 벌어진다. 따라서 다큐는 인간적인 요소를 극화하여 보여줄 때와 마찬가지로 시청자에 대한 소구력, 공감대, 정서적인 영향 등을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
7.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그의 시야를 좁게 유지해야 한다. 그는 큰 그림 전체를 보여주기 위해서 작은 그림을 사용해야 한다.
8.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그 현실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줬을 때 그의 임무가 완수된다.
9. 과거의 사실에 대해 보도하는 뉴스 제작자와는 달리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새로운 공동체에서의 행동을 주도할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써 미래의 뉴스를 만들어낸다.
10.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자유공동체의 임무가 그 스스로 갖고 있는 믿음의 체계로부터 스스로의 리얼리티를 창조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즉 현실 속에서 현실을 재창조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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