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부터 알고 있는 유일한 마음을 기준으로 삼아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윤리의 요구와 과학적 기준의 요구는 반대 방향으로 치닫는다. 윤리의 길은 설혹 과오가 있다 하더라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확대 해석하는 쪽을 택한다. 과학의 길은 증명의 멍에를 씌우려고 한다. 당신이 과학자라면, 예컨대 글루타메이트 분자(신경 세포들 간의 연락에 관여하는 중요한 신경 전달 물질)의 존재는 마음이 있음을 뜻한다고 그저 선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마음이 없다는 것을 귀무가설(null hypothesis: 그것이 부정되면 그 반대 가설이 받아들여지는 가설)로 설정한 다음에 마음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것이 협법상의 귀무가설이다.)
"사자가 말을 하다고 해도, 우리는 사자를 이해하지 못한다."(1958, Ludwig Wittgenstein)
"우리는 자기 복제하는 이들 로봇[RNA, DNA와 같은 복제 분자]의 직계 자손이다" … 좀 더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증조할머니의 증조할머니의… 증조할머니는 로봇이었다! 우리는 그런 거대 분자 로봇의 후예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 우리의 육체(물론 뇌를 포함하여)는 알고 보면 이 놀랍고 멋지게 설계된 작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양육혼(nutritive soul)이라 할 만한 것.
우리는 이 장구한 역사를 가진 계들과 우리의 마음을 날카롭게 구분짓지만, 묘하게도 그 계들의 세세한 작동 구조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들이 마음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향적 태도는 어떤 대상(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 또는 인공물일 수도 있다.)이 마치 스스로의 '믿음'과 '욕구'를 고려하여 '행위'를 '선택'하는 합리적 행위자인 듯 그 대상의 행동을 이해하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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