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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워낭소리 (09.05.06)







 
큰 선풍을 일으켰던 영화 <워낭소리>를 오늘에서야 보았다. 어머니와 함께 보았는데, 어머니와 나는 도시 출신이었다. 농촌 벽지의 풍경은 가슴이 저릿했다. 그것은 마치, 조선 고종대의 신식 군인이 낡은 칼을 보는 느낌이었을까.   

 어머니는 영화를 보면서 노인 둘의 주름과 풍상을 안타까워했고, 또 두려워했다. '늙음'과 추함…. 어머니 또한 저렇게 늙을 것이고, 추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두 내외의 9남매처럼 부모의 <업>에서 점점 멀어지리라. 마치 연꽃을 스치는 바람 아니라, 연꽃을 아주 오래 전에 만나고 오는 바람처럼…. 삶이란 어렵다. 어려우리라. 움켜쥔 순간 바람처럼 빠져나가 버리는데, 바람은 언제나 내 주위에서 살랑인다. 나도 늙을 것이다.  

 영화의 세련되기 그지없던 두 장면: "미친소가 몰려온다"는 구호를 제창하던 한미 FTA 반대 시위단 앞을 천천히 지나가던 소와, 소가 끌던 수레에 탄 할머니 할아버지. 감독의 의도였을까. 어쨌든 정말 멋진 그림이 나왔고, 이에 비하면 전경들에게 담배 한 대 건네는 60년대 동경대 대학생의 사진은 저리가라다. 같은 아이러니지만, 이쪽은 느긋하지 않은가! 그리고 두 번째는 주차장의 고급승용차 옆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던 늙은 소.    

 나는 영화나 다큐멘터리 기법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나는 다만 영상이 지나치게 정적이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들었다. 불필요한 감상적인 군더더기로 질질 끄는 느낌이 없었던 것이 좋았다. 몇 년 전 영화 <집으로>를 보면서 엄청나게 지루하고 실망스러웠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영화 내내 풍겨나오던 작위적이고 감상적인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집으로>가 허구의 세계인 데 반해 <워낭소리>가 현실을 그리고 있다면, <워낭소리>에서는 현실의 세계를 그릴 때(다큐멘터리)에 빈번하게 개입되는 듯한 작가의 '긴' 응시가 그리 도드리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응시들은 대개 관객의 '성찰'을 강요한다지만, 대개 작가의 욕심의 소산이고, 따분하다. 요컨대 이 영화의 속도 조절은 내가 원하던 바와 잘 맞았다.

 영화의 첫 씬도 불교 의식에서 시작하고, 영화에선 불교의 향취가 많이 났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후학들이 이 세상에 점점 번성한다 해도, 할아버지가 평생 고치지 못할 할아버지만의 정신 속 깊숙한 '방'은 끝내 없애지 못할 성싶다. 없앨 이유도 없고 없애려는 사람도 없다. 할아버지는 너무 늙으셨으니까. 그러므로 할아버지 정신 속의 이제 곧 폐기될 '방'은, 그러니깐 할아버지의 <업>은, 순수하다. 그것은 늙은 소처럼 무력하면서도 충직하다. 세상만사와 인간들의 불필요한 온갖 제스쳐들과 왁자지껄함에서 벗어나서, 제 모습을 투명하고 순순하게 드러내는 업이다. 범접이 허락되지 않는 곳에는 모두 어떤 존엄함과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으리라. 

  피에르 쌍쏘는 성당이나 시장 구석의 한 자리를 소리없이, 그리고 변함없이 지키는 묵묵한 노인들을 언급하며 이렇게 썼다. "나는 이처럼 단순한 집착을 뛰어넘어 한 장소에 완전히 들러붙음으로써 그 장소를 증언해주는 사람들을 모두 존경한다―" 그러나… 마땅히 존경받을 만한, 늙은 소와 두 노인의 풍경에 우리 모두가 열광했던 것은, 역시 조금 씁쓸하다. 마치 떠나간 옛 연인의 소식을 흘끗거리는 것마냥….

 이제부터라도, <영화>라는 이름으로, 정말 존경을 받을 만한 곳에우리의 시선이 더 많이 머무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워낭소리> 감독의 에필로그― "우리의 유년 시절을 위해 헌신했던 이 땅의 모든 소와 모든 부모님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 에 들어가 있는 어색한 부담감과 지나친 진지함을, 영화인들과 우리 관객 모두가 조금씩 덜어나갈 수 있기를…. 누구나 느끼듯, 옛 연인과 다시 이어지려는 억지스런 시도는 그(그녀)의 참다운 모습에 다다르는 것을 또 다시 방해할 테니깐.

 

 
 힘이 든다
 소를 몰고 밭을 갈기란
 비탈밭 중간 대목 쯤 이르러
 다리를 벌리고 오줌을 솰솰 싸면서 
 소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바뀌면
 내가 몰고 너희가 끌리라
 그런 날 밤
 콩섞인 여물을 주고 곤히 자는 밖에서
 아무개야 아무개야 불러 나가보니
 그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이상국, <축우지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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