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서울 중앙시네마에서 <예스맨 프로젝트Yesmen Fix The World>를 보았다. 여자친구와 킬킬거리면서 즐겁게.
'예스 맨'(Yes men)이라는 단체의 앤디 비크바움과 마이클 보나노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다큐멘터리. 마이클 무어 감독과 호흡을 맞춰왔던 커트 잉페어가 공동 감독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앤디와 마이클은 대학에서 미디어 예술 등을 강의하면서, '예스 맨'을 창립했다고. 둘의 이력을 살펴보니 둘 다 어지간히 괴짜였던 모양이다.
그네의 표현에 따르면, '신원 도용'(identity correction)을 통해서 세계를 고친다는 것이라.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명백히 부당한 사안들에 대해서 '정의의 가면'을 쓰고 '예스'를 외칠 것. 이를테면 아직도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1984년 인도 보팔 참사에 대해 책임자인 다우(Dow Chemical) 회사가 전면적인 보상을 실시한다는 것, 루이지애나 홍수 피해 이후 다시 자신의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서 주정부와 시당국은 저소득층 임대주택 정책을 확대 실시한다는 것, WTO의 이름을 빌려 국제회의장에서 세계화의 폐해를 주창하고 연설을 하고 유유히 사라진다는 것 등등.
결국 이런 것들은 反세계화와 反신자유주의를 말하는 퍼포먼스이자, 다큐멘터리는 그것에 대한 유쾌한 내용이었으나, 그러한 진보적인 슬로건들이 다큐멘터리 내용중에 직접적으로는 거의 삽입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대신 다큐는 중간중간 가벼운 막간극 격으로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한 시장자유주의자들의 인터뷰를 우스꽝스럽게 편집하고, 1930년대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통찰력 있는 고전 미국만화의 화면들을 삽입시키면서, 세계화된 자본주의와 시장자유주의의 위험성을 주장한다.
위의 사진과 다음 인터뷰 내용은 프레시안 기사에서. 김숙현 기자.
- 운동을 하다가 절망감을 느끼고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 왜 그럴까.
너무 진지하고 열심히 하다 피로감을 느껴서가 아닐까. 눈에 당장 보이는 성공은 드무니까. 내가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활동을 하든 즉각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거나 눈에 보이는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을 유념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당장 눈앞에 실패로 보이는 것들도 이것들이 계속 차곡차곡 쌓이면 밑거름이 되고 결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된다. 하지만 여기엔 시간이 좀 걸린다. 쌍용자동차의 투쟁도 당장은 실패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싸움의 기억이 계속 쌓이고 축적되면 언젠가 사회는 바뀐다. 그간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 현실이 어떤 모습이겠는가. 미국에서는 70년대에 유해물질 투기에 대한 규제 법안을 만들라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움직임과 활동이 계속 있었으나 오랫동안 실패를 거듭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싸움이 쌓이다 보니 여론이 점점 커지게 되고, 결국 환경부가 여론에 못 이겨 법을 제정하게 됐다. 싸움이란 그런 것이다.
- 예스맨 활동을 하면서 당신의 인생이 변한 게 있다면.
이 활동을 하기 전에는 내 인생의 목적이 뭔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러나 이 활동을 하면서 나의 조그마한 재주나 능력이나마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자 많은 게 변했다. 내 재능에 대해서도 알고 확신하게 됐고, 인생의 목표도 변했고. 난 지금 굉장히 행복하다.
- 한국에서 특히 막 이런 운동과 활동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응원의 말씀 부탁드린다.
한 마디로, 이런 활동은 무척 재미있다. 바보짓일수록 재미있고, 거기에 정치적 의미를 담는다면 재미가 5배로 는다. 심지어 건강에도 좋다.
하루 18시간 이상 주가실황화면 앞에 죽치고 앉아있다는 주식 중계 전문가의 인터뷰를 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ㅋ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유념해야 할 '명랑성'이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분위기도 참 좋았고… 편견에서 자유로울 것. 우리는 주식 중계 전문가, 라고 하면 왜 뭔가 연상되는 고정관념 같은 게 있지 않나? 유머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오타쿠스럽고, 눈은 충혈되어 있고, 밀폐된 공간에 틀어박혀서…. 이런 관념으로부터 자유롭고 누구와도 즐겁게 어울릴 수 있어야 '예스 맨'의 심정적인 일원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보팔 해프닝을 바라보면서, 내 안에 눙치고 있던 '보수성'을 끔찍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건 귀중한 경험이었다. 20여년간 고통을 받은 보팔 주민들을 떠올리기 전에 먼저 주식으로 돈을 잃은 사람들을 걱정하려는 태도라니…. 나는 너무 오랫동안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채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큐의 말미, <뉴욕타임스>의 이름을 도용한 사건은 감동적이었다. 퍽 원시적으로 보이는 수작업 공정으로 신문을 찍어내는 일이 어찌나 멋지게 보이던지. 왜 저런 아이디어를 실행하지 못했지, 라고 생각하다가도….
<예스맨 프로젝트>는 촬영기법이라든지, 화면의 구성과 예술성 운운하던 내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던 다큐멘터리였다. 어설프고 거칠게 보이는 핸드헬드 촬영과 편집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래서 더욱, 선명한 주제의식과 자유로운 감독의 시선이 도드라져 보였다. 문제는 '자신감'이다. 남 신경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10년여의 시간 동안 누적된 해프닝들을 모아서 이렇듯 근사한 작품 하나를 완성시켜놓은 걸 보니 '기록의 힘'이 크다는 걸 새삼 느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퍼포먼스는 기막힌 '연극'이었다. 권위를 빼앗아서 한 순간 내동댕이치기. 세계에 아이러니컬한 균열 내기. "왕이 광대가 되고, 광대가 왕이 되는" 연극 스테이지를 현실로 끌어오기. 위험을 무릅쓰고 세계와 부딪치는 것을 피하는 광대는 '광대인 척하는 소시민'에 불과하며, 나는 한국에 존재하는 거리극과 광대극 등을 볼 때마다 이러한 회의감과 불편함을 감출 수 없다.
영국의 연출가 키스 존스턴의 책 <즉흥연기>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예스'(Yes)론자와 '노'(No)론자에 관한 짤막한 심리학적 분류가 소개되어 있다. 세상을 대하는 사람들의 두 가지 성향은 기본적으로 '예스'와 '노'로 나눌 수 있는데, '예스론자'들이 대개 어떤 일에 대해 '긍정'하고, '한 번 해보는 게 어때?'하는 도전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어, 그거 괜찮은데?' 라면서 가능성을 보는 일에 적극적이라면, '노No론자'들은 매사에 일단 부정적이고,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하는 회의적인 생각에 익숙하며, 조심스럽고 의심하는 마음이 강한 성격을 지닌다고 한다. 물론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며, 두 성격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게 좋은 것일 게다. 어쨌거나 당신의 주변에는 '예스'론자가 많은가, '노'론자가 많은가?
가슴 안에 강하게 "YES"의 심성이 꿈틀거리고 있는 나로서는, "NO"의 타성에 '쩔어있는' 이 나라 문화와 주변 사람들의 습관에 대해서 피곤하고 지칠 때가 정말 많았다…. (거의 모든 토론, 스터디, 세미나에서 그러했다) 그것이 세상에 불만을 품고, 세계의 '대안'을 꿈꾸는 사람들과의 대화일 경우에는 이 점에 관해 더욱 질려버렸다. 인간 · 사회현실에 관한 다양하고 참신한 <대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이를테면, MB와 공무원과 CEO들 뿐만이 아니다. 나는 상대방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여유롭게 그 긍정적인 측면을 검토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닫힌 마음, 닫힌 눈빛, 게으른 타성에서 '보수성'의 씨앗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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