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에 박은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을 가리키는 문학용어.
원래 인쇄에서 사용하는 연판(鉛版)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판에 박은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생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일반적인 용법에서 벗어나 있어서 그 문구 자체로 관심을 끄는 말인데, 너무 자주 사용되어 진부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표현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I beg your pardon(죄송합니다)’ 또는 편지 끝에 쓰는 ‘Sincerely yours(당신의 친구가)’ 등은 그 문구 자체가 주의를 끌지 않는 상용 문구들이다. ‘my better half(아내)’, ‘the eternal verities(영원한 진리)’ 등의 표현은 진부한 표현으로 간주되며, ‘alienation(소외)’, ‘identity crisis(자아 동일성 위기)’, ‘interface(공유 영역)’ 등과 같은 단어의 무분별한 사용 역시 진부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
"클리셰는 19세기의 인쇄용어에서 출발했습니다. 클리셰는 당시 인쇄공들이 활자판에 쉽게 끼워넣을 수 있도록 미리 만들어놓은 조판이었습니다. 이게 19세기 말부터 보편적인 의미, 그러니까 별로 노력하지 않고 집어넣은 진부한 문구나 생각, 개념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오늘날까지 이른 것이지요.
다시 정리합니다. 현대어에서 클리셰란 무엇일까요? 그건 예전에는 독창적이었고 나름대로 진지한 의미를 지녔으나 지금은 생각없이 반복되고 있는 생각이나 문구, 영화적 트릭, 그 밖의 기타 등등입니다.
반복된다는 것만으로는 클리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원래 우리는 그렇게 독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전도서의 저자가 말했듯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까요. 아직도 수많은 영화와 소설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되풀이된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이혼하지만 그걸 보고 클리셰라고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수없이 보고 들은 내용을 되풀이할 뿐이지만 [밀회]는 얼마나 강렬한 영화인가요.
클리셰의 특징은 '자기 생각없이'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클리셰들이 장르 안에서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진부한 작품 속에서는 진짜 정서와 아이디어 대신 공식과 규칙이 돌아다닙니다.
공식과 규칙 자체 때문에 작품이 따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클리셰의 생각없는 차용이 따분한 이유는 그것이 기성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실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클리셰의 대부분은 말라붙은 배설물처럼 살아숨쉬는 진실성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클리셰가 쓸모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부함에는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으니까요. 많은 장르 영화 관객들은 클리셰를 오히려 매력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제식입니다.
많은 뛰어난 장르 작가들에게도 클리셰는 매력적입니다. 그들은 이 사랑스럽게 진부한 공식들을 멋대로 뜯어고치거나 아니면 극단적으로 충실하게 따라가며 즐깁니다. 놀이터는 충분합니다! (…) 클리셰를 독창성으로 착각하지 말고 클리셰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클리셰는 고약하다. 영화의 역사가 축적되면서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된,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인 클리셰는 애증의 대상이다. 영화가 뻔하게 흘러갈 때 관객은 불평하지만, 그 뻔함을 지나치게 벗어난 영화는 낯설고 생뚱맞다. 특히 장르 영화에서 클리셰의 운명은 더욱 가혹하다. 그 관습과 공식과 아이콘 속에서 미묘한 줄다리기를 해야 하며, 관객의 기대감에 너무 뒤쳐져서도 그들의 예상을 너무 빗나가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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