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란이 된 한겨레의 6월 11일자 원본 사진이 실려있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sogang89?Redirect=Log&logNo=140108657181
* 이후 제목이 수정된 기사 전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047389
● 그리고 내가 아랑 게시판에 올린 글
http://cafe.daum.net/forjournalists/Df5G/2064
이 표현이 상당히 논란이 되었고, 결국은 한겨레가 사과하는 선으로 마무리 되었다지요?
아랑에서도 대다수 분들이 이 기사를 비판하시던데…. 전 여기서는 조금 다른 시각을 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많은 반박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다른 생각이 정정당당히 부딪치는 일은 서로에게 도움이 될 터이니,
제 생각을 한 번 적어보려고 합니다.
부디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텍스트가 되었으면 좋겠는데요. (쓰는 이에게도 읽는 이에게도요.^^)
일단 저 기사의 내용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분은 거의 없으신 걸로 압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놈현'과 '관 장사'라는 두 표현이고요.
그리고 제 생각으로는 많은 회원님들도 아마 기사의 의도대로,
"노무현을 정치에 이용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라는 명제에는 공감하고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오로지 표현의 문제입니다.
(물론 서해성의 태도 등에 대한 비판이 있지요. 토론게시판의 바로 아래 분께서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해 주셨는데요.
하지만 저는 '놈현'과 '관 장사'라는 논쟁적인 표현이 기사에 실리지 않았다면,
위와 같은 몇몇 지적들이 딱히 '문제화'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다고 판단합니다.)
'놈현'과 '관 장사'라는 표현을 비판하는 시각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아요.
1. 고인이 된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2. 그것은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이 노무현을 깔 때 주로 사용하던 표현이다
3. 언론으로서 갖추어야 할 품격을 갖추지 못했다. 원색적이다.
첫 번째, '예의'에 관한 같은 문제에서는, 우리나라의 '예의'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만약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집안 어른들이 할아버지의 이름만을 여기저기 팔아먹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고 내가 집안 어른들 앞에서 대놓고 "관 장사" 운운하면, 싸가지 없는 놈이 분명할 겁니다.
그런데 전 대통령과 정치권, 그리고 공적 영역의 저널리즘의 문제는 다릅니다.
공적 영역의 '예의'란 다른 말로 '사회적 양식' 정도가 되겠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정의하는 '양식'의 기준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이와 비슷한 문제로 조중동한테 얼마나 많이 까였습니까?
예의 없다고, 경솔하다고, 그게 대통령이 할 말이냐고, 단어 선택이 도대체 그게 뭐냐고...
예컨대 "다른 것은 다 깽판을 쳐도 남북관계만 잘하면 된다"라는 취임 초 노무현의 말.
우리는 저 말의 '기의'를 알지요. 그러나 얼마나 가루가 될 정도로 까였었는지요.
(그리고, 저 말 역시 "사회적 양식"의 눈으로 보면 까일 만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해서, '예의'와 관련된 저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과 다를 수 있지요.)
우리 사회의 '예의'란, 대개는,
'자신과 다른 공적 생각을 자극적이고 선명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의 다른 이름으로 오용되고 있다고요.
그리고 저는 그 (유사)'예의'가 지닌 사회적 무의식이,
우리 사회의 편가르기, 이분법적 사고 방식, "자유가 아니면 죽음"식의 사고방식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말' 그 자체에 대해서 좀 더 관용을 보여야 합니다.
(진보든 보수든 간에요. 어쩌면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더 요구되는 덕목일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놈현'과 '관 장사'는 조중동에서 쓰던 표현이다?
이건 그리 명확한 비판 근거는 아니겠지요.
왜냐면 (중간에 관 장사 하나를 안 챙기긴 했지만) 기사에서도 두 단어에 작은따옴표를 챙겨서 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건 곧 토론 참가자들이 그 단어들의 사용방식과 숨은 의미를 이미 전제하고 있는 거죠.
보수언론에서 주로 쓰이고, 노무현의 '이름'만을 까대는 태도를 한 번 더 전제하며 토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거지요.
물론 많은 분들이 이런 점을 간과하고 저 표현을 비판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조중동에서 쓰이는 표현이므로 잘못되었다는 식의 비판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듯하구요.
세 번째, 언론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품격 문제. 이것도 첫 번째 문제와 통하겠지요.
아니, 어쩌면 '예의' 문제가 조금 다르게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언론의 품격은 데스크가 택한 한두 단어의 논쟁적 선택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고요.
일단 한홍구와 서해성은 한겨레 신문의 고정 필자라고 봐도 될 겁니다.
그 고정 필자가 "노무현의 이름만을 팔아먹고 다니는" 야권 정치인들을 뚜렷하게 비판했다면,
왜 한겨레 데스크는 "관 장사"라는 표현을 뽑아서는 안 되는 건지 저는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관 장사"가 그렇게도 품격 없고, 원색적이며, 노 대통령을 깔아뭉개는 단어인가요?
만약 그렇게 본다면, 현재의 신문 만평들의 '품격'이 어떻게 성립되는 건지요.
'만평'과 '기획 인터뷰의 제목'은 다른 걸까요? 데스크의 입장을 드러낸다는 점에선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저널리즘이 지녀야 할 '촌철'의 정신에 입각해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컨대, 저는 "놈현"과 "관 장사"라는 표현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적해야 할 것은 그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좀 다른 얘기들이 오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곳에서도 너무 한쪽으로만 시각이 몰린 듯해 이렇게 제가 글을 쓰고 있는 것이겠지요...^^
여기까지가 제목과 같이 저의 '옹호'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 기사 사태에 관한 저의 주관적인 생각들을 좀 더 첨언하자면...
많은 이들의 한겨레 데스크에 대한 불신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어떤 표현 그 자체의 문제보다도, 이런 '불신'이 커다란 논란을 낳은 배경이겠고요.
개인적으로는, 데스크에서 6월 11일 제목을 "놈현"과 "관 장사"를 뽑기로 결정한 이후에,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해 비난하고 비판하자, 결국은 사과하고 수정한 한겨레의 데스크가 실망스럽습니다.
말하자면 "사즉생"의 심정으로, 왜 그러한 표현을 썼는지, 쓰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굽히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나아갔더라면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많은 분들과 제가 갖는 생각이 갈라서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스스로의 원칙을 폐절하며 편집을 수정하는 신문에는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한겨레의 '정치성'에 의문을 갖습니다.
한겨레의 데스크가 수많은 분파와 계파에 의해 휘둘린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공공연한 사실인데요...
"정치적이지 않은 신문은 없다"는 말의 뜻이야, 많은 분들이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필연적으로 정치색을 띨 거면 확실하게, 원칙을 갖고, 날카롭게 벼린 자세로 정치적일 것.
그것이 제가 원하는 저널리즘의 모습입니다.
데스크가 '고인에 대한 예우' 운운하는 시각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써내야겠다면,
뭇 사람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쓰는 게 제가 원하는 신문의 모습인 거죠.
많은 분들처럼, 그러나 조금은 다른 맥락에서, 저도 한겨레가 앞으로 거듭나기를 바래봅니다......
* 하나만 더. 저는 한겨레 "절독"을 선언했다가 다시 돌아선 모 정치인과 같은 태도를 가장 신뢰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