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의흐름

'V세대'의 안타까움….






동아일보 사회면 톱에 봉아름 기자의 V세대 관련 기사가 실렸다. (동아일보 3월 9일) 기사는 "교실의 V세대. 그들은 어떻게 공부하며 비전과 진로는 어떻게 정할까. V세대의 성향은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이 V세대를 효과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학부모는 어떤 지혜와 태도를 갖춰야 할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벤쿠버의 'V'와 잘 어울리는…. '쿨한 신세대'…. 쇼트트랙 이정수와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선수, 최연소 시인으로 등단한 문학소녀, '不狂不及'이란 좌우명을 지니고 서울대에 입학했으며 훗날 유엔에서 일하고 싶다는 대학 신입생,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젊은이…. 요컨대 봉 기자가 말하는 'V세대'는 자신의 영역에서 예전과는 다른 신선한 감성으로 성공한,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생의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듯싶다. (이미 '성공'한!)


이런 딱지들이야 어떻든간에 상관없다. 나는, 일찍이 재능과 취향 양면에서 자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쏟아부을 수 있는 영역을 발견하고 거기에 꾸준한 노력을 들인 저 젊은이들의 모습이 교육(또는, 공부)의 자연스러운 취지와 잘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또 이런 취지가 소위 운위되는 '좌파'의 교육담론이 섬세하게 다루는 데 가장 취약한 면이라고도 생각한다. 

내 여자친구가 읽은 후 블로그에 요약한 바에 따르면, 이반 일리히는 "사물, 모범, 동료, 연장자"라는 네 가지 요소가 구비된다면 진정한 공부가 어디서든 가능하리라고 했단다. 참으로 간명하면서도 의미 깊은 말이다.

일리히의 틀을 이용해서, 성장하는 학생들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자신(만)의 끼를 살릴 수 있는 얼마나 협소하면서도 부박한 토양의 '사물'들을 가지고 있을까. 선생님과 학부모라는 '연장자'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연장자'다운 면모로 다가서고 있을까. 학생들의 '모범'은 누구인가. 우리는 그들에게 진정한 '모범'을 제시하는 일에 얼마나 인색하고 또 우둔한가. 그들의 '동료'는 어떨까. 동료를 동료로 만들어주지 못한 점에 있어서 기성세대들은 얼마나 큰 책임을 느껴야 하는가. 근본적으로는, 왜 우리 교육현실에서 일리히적인 의미의 '진정한 공부'를 그토록 찾아보기 힘든 걸까.

이런 개념들을 통해 바라보면 상당히 여러 가지 생각거리들이 뽑아져나올 수 있을 듯하다. 저널리즘적인 '세대론'이 지닌 허구성은 물론, 지배적인 교육담론의 지나친 거시성을 보완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단 <대한민국 10代를 인터뷰하다>라는 책을 읽어보라. 그렇다면 'V세대'의 "성공한 10대 찬양"과, '공부의 신'의 "일단 네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라" 따위의 논의가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를 알 수 있으리라.
- 이번 위클리경향의 표제기사가 '88둥이'에 대한 것이던데, 벤쿠버를 바라보는 조중동의 시각과 한 번 비교해볼 만하다.  


* 서울대 입학한 'V세대' 중 한 명에 대해:

“훗날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다”… 등굣길 차 안에서는 창밖도 잘 내다보지 않았다. 유혹거리나 공상에 빠질까봐서다. 매일 오전 일과를 시작하기 전 20분씩 눈을 감고 꿈을 이룬 미래의 순간을 상상했다. 식사, 운동량, 수면시간도 철저히 관리했다. 매일 공부일기를 쓰며 스스로 격려하고 반성했다. 

봉 기자에 따르면, 그 학생은 그러했다고 한다. 나는 그 학생의 '성실성'보다는 고3 시절 반장의 자리에서 홀로 공부해야 하나 반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나 하는 고민 때문에 힘겨워했던 내 여자친구의 '성실성'을 사랑한다. 내 여자친구여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실함과, 입시생들(다시 말해 모든 중고생들)에게 통용되는 성실함의 통속적 의미에 너무 큰 괴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녀의 성실성은 양명하고 건강한 성실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은 자신의 실존적 충실감을 자기 안에 가두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해야 하리라. 그 <자기 안에 가두지 않음>에서 건강함이 우러나오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이 엿보인다. 또 나는 우리의 교실과,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가장 빈천한 덕목이 바로 그러한 '건강성'이라고 생각한다. 남 앞에 나서면서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건강성. 현재를 있는 힘껏 누릴 수 있는 건강성. 티없이 사람들 안에 스며들어 활짝 웃을 수 있는 능력. 또 나와는 다른 이들을 인정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것은 결코 완성되지 않은, 고민하고 힘겨우며, 또 실패도 할 수 있는 사춘기적인 건강함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바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건강성을 상실하고, 이미 성공한 (멋지고 깔끔한) 사례와 사람들을 아이들에게 던져주면서, 선망과 질투와 자괴감을 마음 속에 고여들게 만드는 '모델化'된 교실은 불행하며, 나는 이 '모델化'적 경향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전반적인 에토스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모델화된 교실과 모델화된 사회는 결국 닭과 달걀의 관계 같은 것이리라. 그리고 신영복 선생님의 글….
 
"'1등'이 치러야 하는 긴장감, '모범'이 요구하는 타율성에 비해 '중간은 풍요하고' '꼴찌는 편안하며' '쪼다는 즐겁다'는 역설도 그것을 단순한 자기합리화나 패배주의의 변(變)이라 단정해버릴 수 없는 상당한 양의 진실을 그 속에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에 요구되는 성실성은, 자신 안의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타인과의 '풍요롭고 편안하며 즐거운' 만남의 결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실존'이란 개개인 안에 가둬둘 만큼 폐쇄적인 개념이 아니다. 나도 그녀도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내공을 쌓고 많은 경험을 한 후에, 언젠가 이러한 '성실성의 전복적 가치'를 크게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알고 보면 '타인'을 모르쇠 하고 '자신에 대한 성실성'만 넘쳐나는 이 세상에 말이다.



'생각의흐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 되기의 어려움  (0) 2010.03.22
생활도서관  (0) 2010.03.15
<윤리>에 대한 메모  (0) 2010.03.08
우리 마음속의 '비굴함'에 대해  (0) 2010.03.02
어떤 스케치  (0) 201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