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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흐름

생활도서관









대학을 막 졸업했는데, 졸업 즈음 언젠가부터, 대학 초창기부터의 내 모습을… 계속 더듬더듬거리게 된다.
눈 먼 이가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는 풍경의 기억들을 더듬거리듯.
늙은 강사가 자신의 옛 박사학위 논문을 쓰다듬듯.


2004년 봄. 1학년 시절. 학부 분위기에 너무 실망했었고….

이 weekly한양 기사를 인터넷에서 보고, 바로 그 다음날, 생활도서관 문을 두드렸었다.
알고 보니 '학생기자' 재석이 형도 생활도서관이었다. 하하…. 취재하지 않은 취재기사, 인터뷰하지 않은 인터뷰기사.

지난 6년 동안 저 대여섯 평의 공간에서 참 많은 일들도 있었고, 많은 생각도 했고, 때론 힘들었고, 때론 즐거웠고….
아쉬움과 회한도 뚝뚝 묻어있는 도서관이지만, 저 작은 곳을 통해서, 나는, 분명히 많이 성장했다.


올해,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한 글에서, 사랑하는 어느 후배는 그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었다.

사르트르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할 것인가? 노부모를 모실 것인가?’라는 한 젊은이의 질문에 “선택은 개인의 자유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선택한 본인의 몫”이라 답했습니다. 지젝은 이 일화를 이렇게 뒤집습니다. “노부모에게는 레지스탕스에 간다고 하라. 레지스탕스에겐 노부모를 모신다고 하라. 그리고 공부하라”


공부하자. 늘 벌거벗은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자.




타오르는 책
                                                                             - 남진우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을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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