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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비평] 춘향전과 방자전 (…) 2일 개봉한 영화 ‘방자전’은 누구나 다 아는 고대소설 ‘춘향전’의 춘향이가 이도령 아닌 방자에게 반했다는 다소 발칙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진짜 주인공은 춘향을 버리고 한양으로 가버린 이몽룡이 아니라 줄곧 곁을 지키며 궂은 일을 무릅쓴 방자였으며, 오늘날 사실과는 전혀 다른 ‘춘향전’이 전해지는 것은 의도적인 왜곡이라는 것이다. 다 아는 이야기를 뒤집어 보는 전복(顚覆)의 재미는 유래가 깊다. 엄밀히 말하면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기생의 딸인 춘향이 장원급제한 어사의 정실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전복적인 내용이지만, 남원 지방에 내려오는 ‘박석고개 전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몽룡을 짝사랑한 춘향은 본래 미녀가 아닌 끔찍한 추녀였고, 월매의 간계에 넘어가 춘향과 하룻밤을 같이한 이몽룡은.. 더보기
클리셰 Cliché 판에 박은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을 가리키는 문학용어. 원래 인쇄에서 사용하는 연판(鉛版)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판에 박은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생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일반적인 용법에서 벗어나 있어서 그 문구 자체로 관심을 끄는 말인데, 너무 자주 사용되어 진부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표현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I beg your pardon(죄송합니다)’ 또는 편지 끝에 쓰는 ‘Sincerely yours(당신의 친구가)’ 등은 그 문구 자체가 주의를 끌지 않는 상용 문구들이다. ‘my better half(아내)’, ‘the eternal verities(영원한 진리)’ 등의 표현은 진부한 표현으로 간주되며, ‘alienation(소외)’, ‘identity crisis(자아.. 더보기
예스맨 프로젝트 The Yes Men Fix The World (2009) 3월 30일, 서울 중앙시네마에서 를 보았다. 여자친구와 킬킬거리면서 즐겁게. '예스 맨'(Yes men)이라는 단체의 앤디 비크바움과 마이클 보나노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다큐멘터리. 마이클 무어 감독과 호흡을 맞춰왔던 커트 잉페어가 공동 감독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앤디와 마이클은 대학에서 미디어 예술 등을 강의하면서, '예스 맨'을 창립했다고. 둘의 이력을 살펴보니 둘 다 어지간히 괴짜였던 모양이다. 그네의 표현에 따르면, '신원 도용'(identity correction)을 통해서 세계를 고친다는 것이라.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명백히 부당한 사안들에 대해서 '정의의 가면'을 쓰고 '예스'를 외칠 것. 이를테면 아직도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1984년 인도 보팔 참사에 대해 책임자인 다우(Dow.. 더보기
인 디 에어 In The Air 3월 28일 오후 5시,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영화 를 보았다. 더할나위없이 감동했다. 이렇게 몰입해서 본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사실인즉 언젠가부터 명성이 자자한 연극 · 영화들을 볼 때 작품들의 단점들이 눈에 하도 밟히는 것이었다. 머릿속으로 '팔짱을 낀 자세로' 작품을 감상했었고, 내가 좋은 걸 받아들이고 감탄하는 능력이 사라지고 투덜거리며 불평하는 버릇만 늘어버린 게 아닌가 걱정도 됐다. 이 영화 한 편으로 그런 걱정들은 저리가라,가 됐다. 내가 오늘처럼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는 능력을 더 정성껏 가꿔나가기를 바란다. 미국의 현실이 극속에 잘 녹아들어가 있고, 이 점에 관해 Roger Evert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영화에선 미국에서 구인난이 가장 심각했던 세인트루이스와 .. 더보기
여자는 여자다(une femme est une femme) 고다르 영화로는 처음 접해본 작품이었다. 그의 혁신적인 발명품이라고 칭해지는 점프컷을 비롯해, 다양한 영화적 · 미적 감각들을 자유롭게 풀어내어놓고 있는 느낌이었다. 예컨대 엉뚱하고 기발한 몽타주, 원색적인 조명과, 초현실적인 배경 및 장치들이 등장하는 화면, 장난스러운 마술효과, 자막의 활용, 뮤트효과를 비롯한 익살스러운 음악의 활용, 등 헐리웃 뮤지컬 영화에 대한 오마주 등등. 여주인공 애너 카리나는 아름다웠다. 이 영화를 찍을 땐 이미 고다르와 카리나는 연애 중이었고, 그녀는 고다르의 세 명의 아내 중 첫번째 아내였다고. 책장의 책과 스탠드를 이용한 남녀간의 침대 안의 다툼은 사랑스럽고 깜찍했고 또, 부러웠다. 막무가내로 아이를 낳고 싶어하면서도, 스트립쇼에 나가고, 스트립쇼에 나가는 걸 (당연히).. 더보기
롭 마샬의 <나인>과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 브로드웨이 안무가 출신의 롭 마샬 감독은 을 찍은 후 일찍부터 을 뮤지컬 영화로 각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의 브로드웨이적 뮤지컬 스타일은 그대로지만, 와 달리 에서 원작을 각색한 결과는 헐겁고 억지스러운 느낌이었다. 음악과 배우들의 퍼포먼스도 기대 이하였다. 그렇다고 영상이 탁월했던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브로드웨이 대극장 스타일의 연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매력적이었다. 영국 국립극단의 경력을 지녀서인지, 그의 연기에서는 연극적인 냄새가 강하게 느껴진다. 행동과 대사의 선은 굵으면서도 감정의 선은 섬세하다. 그러나 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보면서도 무언가 불편하고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무언가 연출의 과잉된 '전시'의 흔적이랄까, 연출.. 더보기
뷰티풀 마인드 이 영화가 어떻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겐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호흡이 매끄럽지 못하고 진행의 흐름도 들쭉날쭉하게 느껴지던데. 물론 감동스럽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재미는 별로 없었다. 내쉬의 병명은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이었고, 내쉬를 좀 더 자세하게 알려면 여기 들어가보면 되겠다. 러셀 크로우의 연기도 좋았고, 미국 영국 아카데미 상을 받았다는 제니퍼 코넬리의 연기도 대단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찾아보니, 아하, 그녀가 바로 의 그녀였구나…. 게임이론 공부해야 되는데. 언제 하지? 더보기
<좋지 아니한家>와 <동감> (07.12.21.) 이렇게 감동적인 영화는 참 오랜만이었다. 사실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영화가 참 잘 됐다는 평들을 보고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었는데, 직접 보고 나니 왜 그런 평들이 나왔는지 알 것도 같았다. 영화의 담담한(시각적으로는 모든 인물들의 '느릿느릿한' 동작들과 카메라 워킹으로 형상화 되었는데) 시각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학교 선생님의 권위가 곤두박질 치고, 가정내의 유대감과 따뜻한 정서는 온데간데 없고,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어머니는 '밥 짓는 기계'처럼 대접받고, 그 어머니가 한순간 젊고 멋진 남자에게 반하고, 원조교제하는 가난하고 어린 여중생이 있고(이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 이슈에 '집중하는' 사회의 시선조차 노골적이고 뻔뻔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큰아들인 용태는 알고.. 더보기
워낭소리 (09.05.06) 큰 선풍을 일으켰던 영화 를 오늘에서야 보았다. 어머니와 함께 보았는데, 어머니와 나는 도시 출신이었다. 농촌 벽지의 풍경은 가슴이 저릿했다. 그것은 마치, 조선 고종대의 신식 군인이 낡은 칼을 보는 느낌이었을까. 어머니는 영화를 보면서 노인 둘의 주름과 풍상을 안타까워했고, 또 두려워했다. '늙음'과 추함…. 어머니 또한 저렇게 늙을 것이고, 추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두 내외의 9남매처럼 부모의 에서 점점 멀어지리라. 마치 연꽃을 스치는 바람 아니라, 연꽃을 아주 오래 전에 만나고 오는 바람처럼…. 삶이란 어렵다. 어려우리라. 움켜쥔 순간 바람처럼 빠져나가 버리는데, 바람은 언제나 내 주위에서 살랑인다. 나도 늙을 것이다. 영화의 세련되기 그지없던 두 장면: "미친소가 몰려온다"는 구호를 제창하던 .. 더보기
<파이트 클럽>과 <빌리 엘리어트> 어제와 오늘, (1999)과 (2000)을 보았다. 은 현란하다. 감각적인 헤비메틀과, 애니메이션이 뒤섞인 파격적인 영상, 속도감, 폭력과 섹스, 브래드 피트의 카리스마, 소비사회에 짓눌린 현대인의 노예근성을 비판하는 주제의식. 그리고 니체적인 세계관. 현대판 조르바라고 할 수 있는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이라는 캐릭터는, 그가 파이트 클럽을 창설하고, "인류가 겪었던 고통을 피하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잭(에드워드 노튼)의 상처에 양잿물을 들이붓는 순간에 딱 절정을 이룬다. 나는 그 캐릭터에 새삼스레 감동받았다. 안락한 현대소비사회에서, '진짜' 인간이 되는 일은 만만치 않으며,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여기까지는 데이비드 핀처의 내공과, 그 내공을 스타일 있게 풀어내는 연출력에 정말 감탄하.. 더보기
멋진하루 이윤기 감독과 두 주연 배우  이윤기 감독은 (2005)와 (2005)를 연출한 신진격의 감독인데, 이 작품을 보니 나는 그의 잠재력에 내기를 한 판 걸고 싶다. 물론 평단에서도 많은 호평을 받았다고. 왜 흥행이 되지 못했을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 이런 엉성한 포스터를 보니깐 왠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영화 홍보팀과 제작사에 딴지를 걸고 싶어졌다. 이 영화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좀 더 잘 아는 분이여, 댓글로 좀 알려주시라. 포스터들 잔잔하면서도 감각적인 카메라워킹은 왕가위 스타일의 영향이 느껴졌다. 지나치게 정적이었던 감도 없지 않았지만, 욕심 안 내고 무리하지 않아서 괜찮았다. 하정우는 이 영화로써, 내가 좋아하는 한국 남자배우의 대열에 찹쌀떡처럼 진득허게 합류.. 더보기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왕가위 감독이 작정하고 '힘을 빼고' 만든 영화인 듯. 잔잔한 삽화격의 영화였으나, 감동적이었다. 단순한 스토리 구조를 뒷받침하는 것은 화려한 캐스팅과 세련된 영상미. 정말이지 그의 감각은 놀라웠다. 현대적인 재즈풍의 음악들도 좋았지만, 섬세하게 약동하는 카메라워킹은, 그의 깊은 내공이 어우러진 '촬영정신'을 기막히게 드러낸다. (90년대 의 기사: 영화 가 만들어지던 과정에서 엿보이는) 자신의 영감에 의존하며 며칠이고 꼼짝않고, 즉흥적인 촬영을 반복하던 그의 작업방식. 그가 스태프와 영화를 장악하는 능력은 아마 놀라울 듯싶다.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감독의 주도권―. 아래, 두 장의 스틸컷을 비교해보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놀랍다. 대단하다. 쓸쓸하고 애잔한, 도회적인 느낌을 이렇게 선명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 더보기
용서받지 못한 자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강의를 듣고 있는 박OO이라고 합니다…. 어제 영화 를 보았습니다. 사실 전 그 영화를 군대에 있을 적에 잠깐 보았었어요. 병장생활 초반 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케이블TV에서 그 영화를 해주고 있었어요. 영화의 '명성'과 대략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그 전부터 알었었기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보았었어요. 근데 영화 중반부를 2~30분 정도 보다가 그만 '에라~' 하고 채널을 돌려버리고 말았어요. 그 생활을 직접 겪고 있던 저로선, 필름에서 연출된 군대가 너무 유치해 보였거든요. 저건 '진짜 군대'가 아니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첫 강의 때 교수님이 이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셨을 때, 속으로는 좀 싫었어요.^^; 그 기억이 남아서요. 그런데 지난 시간에도 교수님이 영.. 더보기
파리넬리Farinelli:Il Castrato · 샤인SHINE 음악 영화를 보고 싶던 차에 와 두 편을 보았다. 파리넬리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샤인은 한대 중앙도서관에서. 용케 두 영화의 감독 모두 다큐멘터리 출신이더라. 제라르 꼬르비오는 벨기에-프랑스의 방송사 출신으로 많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었고, 스콧 힉스는 천안문 사태와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한 적이 있었다고. 두 작품 다 연출이 탁월했던 것 같다. 선이 굵은 느낌이었다. 작은 것에 매달리지 않는. 영화의 제재도 비슷했다. '천재(혹은 예술가)가 어떻게 세계와 맞닥뜨리는가…." 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보았을 땐, 전자에 비해서 후자는 훨씬 밝고 긍정적이다. 영화의 제목이 상징하듯 말이다. 파리넬리에 비하면 데이빗 헬프갓은 운이 좋았다, 영화 속 대사처럼 말이다. 마침 둘 다 실존인물이기도 했다... 더보기